장면1. 지난 19일 열린 평창올림픽 여자 팀 추월 경기. ‘팀 경기’임에도 노선영 선수가 다른 두 선수보다 한참을 뒤처져 결승선을 통과했다. 경기 후에도 노선영은 김보름, 박지우 선수와 따로 떨어져 혼자 있었다. 이튿날 해명 기자회견장에는 끼지도 못했다. ‘이게 팀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빙상연맹의 어처구니없는 행정과 간부의 독선도 도마 위에 올랐다.

장면2. 최근 부산시 배드민턴협회 회장이 자진 사퇴했다. 2016년 생활체육과 엘리트 체육이 합쳐지면서 통합협회장에 당선된 이 회장은 임기를 반도 못 채우고 물러났다. 통합 이후 지속된 생활체육과 엘리트 체육의 내부 갈등에 시달린 까닭이다. 그동안 양측의 고소·고발이 난무했고 협회가 주최한 대회가 파행을 빚기도 했다.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두 장면은 한 꺼풀 벗긴 한국체육의 민낯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여자 팀 추월 사태는 성적 제일주의에 매몰된 대한민국 체육이 패거리 문화와 만나 안으로 곪아 터진 것이다. 특히 각 종목 대표팀의 ‘로열패밀리’ 한국체대, 그 안에서도 주류의 오만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부산배드민턴협회 사태 역시 엘리트주의가 잉태한 해묵은 문제로, 이슈화되지 않았을 뿐 체육계 고질 중의 하나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이 강제로 합쳐지면서 그 과도기에 양 진영의 충돌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부산이나 배드민턴 종목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렇게 체육계는 안으로 곪아 있었지만, 우리 국민과 선수들은 평창에서 놀라울 정도의 성숙함을 보여줬다. 금메달을 놓치면 선수보다 더 원통해하고 질책하던 예전의 국민이 아니었다. 성적을 떠나 정정당당하고 떳떳한 경기를 펼친 선수들을 따뜻한 박수로 격려했다. 선수들도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결승전에서 지면 은메달을 따고도 마치 세상을 다 잃은 듯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선수는 없었다. 은메달이든 동메달이든 자신이 흘린 땀의 값어치를 소중히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오히려 메달을 놓치더라도 경기를 즐기는 모습에 우리는 감동했다. 앞으로 우리 체육이 가야 할 방향을 국민과 선수들이 먼저 보여준 것 아닐까 싶다.

이를 반영하듯 체육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혁신은 학교에서 시작됐다. 지난달 26일 경남도교육청이 ‘선진형 학교운동부 운영 혁신안’을 발표했다. 도내 초등학교 엘리트 체육을 없애고 학생들이 다 함께 즐기는 스포츠클럽 형식으로 바꾸겠다는 내용이다. 체육회에 등록하는 엘리트 선수 명단은 그대로 제출하지만 이들을 별도로 집중적으로 지도하지는 않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공부하는 학생선수 육성 시스템을 구축해 학생들의 체력을 키우고 취미로 즐길 수 있는 학교체육을 만들어 가겠다는 의미다.

당연한 수순이다. 운동 성적 때문에 공부를 안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공부하면서 운동에 특출한 능력을 보이는 학생은 선수로 키우면 된다. ‘헝그리 정신’을 앞세워 운동에 목숨 걸던 시대는 끝났다. 이번 올림픽에서 글로벌스타가 된 ‘갈릭 걸스’ 여자 컬링팀의 출발이 방과후 동아리 활동이라는 건 온 국민이 다 아는 얘기다. 빙속 스타 이상화를 제친 일본의 고다에라도 엘리트 선수 출신이 아니다. 그는 병원에서 예방센터 직원으로 일하며 뒤늦게 꽃을 피운 늦깎이다.

2016년 유로선수권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아이슬란드 축구가 생활체육의 좋은 예다. 인구 35만 명에 직업 축구선수가 100여 명뿐인 축구변방이 강국을 차례로 꺾고 유로 8강에 오르고 월드컵 본선에도 진출했다. 선수 중에는 영화감독도 있고 목수도 있다. 감독은 치과의사다. 생활체육에서 시작한 밑바닥의 힘이 ‘축구동화’를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서기까지 엘리트 체육이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부작용 또한 많았다.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기능인으로 육성되다 보니 성공한 1% 외에는 그저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고 중도 탈락하면 아웃사이더로 내몰리기도 했다. 정유라 같은 체육특기생의 폐해도 파생됐다. 하지만 학교부터 엘리트 위주의 체육에서 벗어난다면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앞서 언급한 배드민턴협회 갈등은 아예 생길 여지조차 없을 것이고 성적 지상주의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입시에 치여서 체육이 삶과 동떨어져 있었다. 학교체육의 정책은 입시 변화에 따라 많은 굴곡을 겪었다. 체육 시간이 줄었고 그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학교 체육활동은 학생이 행복할 수 있는 필수조건이 됐다. 입시 위주 교육에 밀려난 학교체육의 정상화를 더는 미룰 수 없다. 학교체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경남도교육청의 이번 혁신이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볼 일이다.

편집국 부국장 dol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