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뭡니까 이게, 사장님 나빠요.” 까무잡잡한 피부의 외국인 노동자 블랑카는 자신을 등쳐 먹는 악덕 고용주를 이렇게 비판한다. 2004년 인기를 끈 코미디 프로그램 ‘블랑카의 이게 뭡니까’의 주인공이 유행시킨 말이다. 유행어가 됐다는 것은 당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대우가 심각했다는 뜻이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외국인 노동자의 처지는 별반 다르지 않다. 내국인이 꺼리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3D)’ 업종에 종사하면서도 임금은 내국인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고용주가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자격을 사실상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탓에 온갖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사장님 나빠’란 유행어가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다.

외국인 노동자 중 여성의 형편은 더 열악하다. “체류기간을 연장하러 사장님하고 단둘이 트럭을 타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갔다 오는 길에 사장님이 모텔 앞에 차를 세우는 거예요. 그러더니 ‘한 번만 자고 가자’고 했어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소개한 한 상담사례다. 이주여성 노동자의 체류자격 약점을 잡은 성폭력이 빈발하고 있다. 이 센터가 2016년 베트남·캄보디아 출신 여성 농업노동자 2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12.4%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노동자뿐 아니다. 결혼 유학 등으로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이주민 200만 명 시대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폭로 이후 여성들의 성폭력 척결 운동이 우리 사회에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지만 외국인 이주여성들에겐 다른 세상 얘기다. 체류자격 문제에다 한국말과 국내 사정에 어두운 취약점들로 인해 피해사실을 털어놓을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보다 못한 이주여성센터가 오늘 국회의원회관에서 ‘이주여성들의 미투’란 주제로 성폭력 사례 발표회를 연다.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의 가장 소외된 곳까지 확산될 전망이다.

때마침 대통령 직속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이 아닌 ‘인간’으로 수정한 개헌안 초안을 마련했다. 현재 한국 국적자로 제한된 기본권 보장 대상을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까지 넓히겠다는 취지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남녀평등은 외국인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미투 운동은 보편적 인권의 확립으로 승화될 때만이 비로소 완결될 수 있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