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더우면 에어컨을 켜고, 추우면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찾는다. 이러한 냉난방기나 보일러에 있는 자동온도 조절(thermostat)시스템은 현재의 온도를 파악해서 원하는 온도보다 실내가 더우면 에어컨을, 추우면 난방기를 작동시켜 온도를 일정하게 조절한다.

1995년 여름, 해양 동물인 ‘갯강구’를 채집하기 위해 오륙도가 보이는 백운포로 갔다. 그곳에는 파도나 해일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테트라포드(Tetrapod)가 설치돼 있었다. 이 블록은 갯강구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숨기 좋은 안식처이다. 갯강구는 무더위 탓인지 미동하지 않고 테트라포드가 만드는 시원한 공간인 그늘 아래 옹기종기 군집을 이루었다. 이 녀석들은 움직임이 매우 재빠르다. 잠자리 채를 사용하여 몇 번을 시도한 끝에 많은 녀석을 포획했다. 하루의 목표치를 채우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차에 타자마자 에어컨을 켰다. 정말로 시원했다.

학교로 이동해 실험실에 들어가자 후덥지근함이 덮쳐 왔다. 더워서 갯강구만 냉동고에 넣고 실험실을 나왔다. 그런 상황에서는 더는 일의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그날 일은 종료했다.

당시 학교의 전력공급 상황이 좋지 않았다.그 때문에 더운데도 에어컨을 켜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특히 필자처럼 갓 부임한 신임 교원이 바로 에어컨을 설치하는 건 눈치가 보여 부담스러웠다.

그러던 중 학교 간 통합이 성사되고 변화가 일어났다. 그 덕택에 다행히 전력 사정이 좋아졌고, 이곳저곳에서 냉방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필자도 쾌적한 연구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큰마음 먹고 실험실에 냉난방기를 설치했다.

인간의 생체 내에도 냉난방기의 자동제어시스템과 유사한 조절 기능이 존재한다. 생체는 항상성(恒常性)을 유지하기 위해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과다한 부분은 줄이는 조절 기능을 발휘한다. 그 시스템 중의 하나가 항상성 조절 역할을 하는 ‘호르몬(Hormone)’이다. 호르몬은 물질 대사 및 성장은 물론 다양한 생리 활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물질이다. 생체 내의 항상성에 이상징후가 감지되면 호르몬이 출동하여 정상 상태로 되돌려 놓는 작업을 한다.

한편 스즈키 교수팀은누에(Bombyxmori)의 뇌로부터 변태(Metamorphosis) 과정에 관여하는 펩타이드호르몬을 발견했다. 흥미롭게도 이 물질은 ‘사람의 인슐린처럼 당 조절효과와 세포 성장의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밝혀졌다. 또한 인슐린의 아미노산 구성 성분과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에 이 물질을 ‘봄빅신(Bombyxin Bombyx와 insulin의 합성어)’이라 명명했다.

민간요법에 의하면 ‘누에는 당뇨병 환자에게 효능이 탁월하다’고 한다. 필자는 선친이 당뇨로 음식조절을 할 때 누에가루를 사다 드렸다. 당시 효험이 좋았는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아마도 누에가루 안에 ‘봄빅신’ 같은 물질이 포함되어서 혈당조절에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된다.

인간은 정상적인 생명 활동을 하기 위해 세포 간 또는 세포집단 간의 소통 및 조절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하물며 누에도 나방이 되기 위해 변태 과정을 조절하는 항상성 조절시스템을 따른다. 이러한 생체조절 기능이 일그러지면 항상성 시스템이 붕괴되고 나방이 되지 못하거나 난치성 질환과 같은 심각한 상황이 초래된다.

우리 사회 역시 이런 스마트한 조절 시스템을 본받았으면 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을 위한 조절보다는 서로를 질시하고 정쟁만을 일삼기 때문이다. 생물이나 사회가 상생을 위해서는 조정과 협력이 필요하다.

사기에 ‘태산불사토양 하해불택세류(泰山不辭土壤 河海不擇細流)’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태산은 한 줌의 흙이라도 수용했기 때문에 웅장하게 되었고, 강과 바다는 한 방울의 물 일지라도 가리지 않고 흡수했기 때문에 그 깊이를 더한다’라는 의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족함은 보충하고, 과다한 부분은 감축하는 항상성 조절시스템을 가동시켜 내부의 결속을 다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를 원한다. 서로 간에 우기다가는 몹쓸 병에 걸려 고통만 남을 뿐이다.

부경대 생물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