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민족인 우리에게 흙은 각별한 의미다. 생존과 삶의 근간을 이뤄서다. 자연히 흙 관련 민속놀이도 다양하게 생겨났다. 그중 하나는 두꺼비집짓기. 모래터에서 헌 집과 새 집을 바꾸자고 노래하며 모래로 집을 짓는 방식이다. 지신(地神)밟기는 지신을 위로해 풍년과 가족 안녕, 무병장수 등을 비는 놀이. 악귀를 몰아내고 착한 신을 불러들이는 뜻이 담겼다. 서낭당 앞에 모여 지신풀이를 하고 마을 구석구석 다니며 지신을 밟았다.

옛날 시골에서는 흙으로 만든 공을 갖고 노는 형태도 있었다. 9개 정도의 구멍에다 흙공을 넣는 방식인데 구멍마다 점수가 달랐다. 그 게임에서 진 아이는 고약한 벌칙을 받아야 했다. 선 채로 담벽에 손을 붙이고 위 아래로 움직이면, 다른 아이들이 흙공을 던져서 그 손을 맞추는 형식이다. 각종 전자게임에 익숙한 지금 아이들로서는 아무 재미도 없는 놀이겠지만, 그 시절엔 인기를 끌었다.

흙을 다룬 우리 문학작품도 꽤 있다. 이광수의 ‘흙’(1932), 이무영의 ‘흙을 그리는 마음’(1935) ‘제1과 제1장’(1939) ‘농민’(1954), 박경리의 ‘토지’ 등. 특히 이무영은 흙을 사랑하고 농촌의 피폐함을 표현한 작가로 유명하다. ‘제1과 제1장’에서는 흙냄새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 게 인상 깊다. 대중가요로는 1970년대 홍세민의 히트곡 ‘흙에 살리라’가 대표적이다. ‘초가삼간 집을 지은 내 고향 정든 땅…나는야 흙에 살리라,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흙에 살리라’.

하지만 요즘 시대에 흙이 주는 이미지는 부정적인 면이 더 강한 거 같다. 언제부터인지 흙 만지는 일을 싫어하고, 때로는 천대하는 풍조가 생겼으니 말이다. 게다가 가난한 집안 출신이나 못 가진 사람을 금수저와 대비해 흙수저로 부르는 게 대명사로 굳어졌다.

그런 흙과 흙공이 근래 하천 살리기의 효자로 각광받고 있다. 황토나 EM(유용 미생물군)등을 반죽해 만든 흙공을 하천에 넣으면 수질정화 효과가 뛰어난 까닭이다. 그제 ‘세계 물의 날’을 맞아 부산 등 국내 곳곳에서 ‘흙공 던지기’가 펼쳐졌다. 비단 특정한 날뿐 아니라 수시로 쓰이는 추세다. 어느 하천에서는 그 덕에 1, 2급수로 깨끗해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옛날 흙공이 친환경 첨병으로 되살아난 격이다. 그런데, 흙수저도 기 죽지 않고 잘사는 세상은 언제 올지 모르겠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