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3월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경기를 TV 등을 통해 보면서 재미와 감동을 느꼈다.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Citius, Altius, Fortius)’라고 하는 올림픽정신을 내세우면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모습이 멋지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것이 ‘큰 게 더 좋다(Bigger is Better)’는 물량주의와 속도주의를 부추켜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원서 표지

1973년 독일출신 영국인 환경경제학자인 E.F.슈마허(Schumacher)가 펴낸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A Study of Economics as if People Mattered)』라는 책이 전 세계 지성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성 회복을 위한 대안경제학’으로 경제성장 지상주의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근거를 제공하며 ‘작은 것’의 가치와 인간 중심의 새로운 경제 대안을 제시하고 나왔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은 거대주의 추구가 자기 파괴로 나아가는 길임을 경고하고 있다. 인간은 작은 존재이므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 말은 ‘큰 것 속에서 작은 것의 가치(Small within Bigness)’를 강조하고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경제학사로 보면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이래 200여 년간 대형화와 ‘규모의 경제’를 지향해온 주류경제학의 담론에 대한 전복적 도전으로 평가되는 환경 고전으로 오늘날 생태주의와 환경론을 상징하는 가장 보편적인 구호가 됐다.

이러한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바로 오늘날 에너지전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로 에너지전환의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슈마허는 특히 조직의 규모가 매우 중요한데 대규모 조직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소규모 분권조직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슈마허의 『내가 믿는 세상』 원서 표지

슈마허는 『내가 믿는 세상』에서 ‘크기라는 결정적 문제’라는 장을 두고 특히 조직의 규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조직이 크면 클수록 지켜야 할 규정과 규제가 많아 누구도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큰 조직들은 아주 불량하고 부도덕하게, 아주 어리석고 비인간적으로 움직이기 마련인데 잘못은 조직을 이루는 사람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조직의 크기에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슈마허의 결론은 행정적 요구사항의 최소화가 가능한 크기로 단위들을 조직하자. 즉 인간적 소통이 가능한 규모의 조직을 가짐으로써 되도록 규칙과 규정의 필요를 줄이자. 그러면 모든 난제들이 현장에서 해결될 수도 있고, 예외적 선례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제안한다.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는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소집단에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규모 단위의 다양성에 대처할 수 있도록 분절화된 구조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업과 원예업의 경우 생물학적으로 건전하며 토지를 비옥하게 하고 건강, 아름다움, 그리고 영속성을 산출하는 생산방법을 완성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면 생산성도 자연이 상승할 것이며 제조업의 경우엔 소규모 기술, 비교적 비폭력적인 기술, 인간의 얼굴을 가진 기술을 개발하는데 관심을 집중시켜, 임금을 위해서만 일하고 여가시간에만 즐거움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면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물론 슈마허도 조직의 규모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진 못했지만 그가 강조한 것은 우리가 그런 것을 찾아내기 위한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슈마허의 이러한 노력은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 즉 ‘기술의 인간화’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한 것이 ‘중간기술’로 집약되고 있다.

슈마허는 근대기술이 인간에게서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손과 머리를 모두 이용하는 창조적이며 유용한 일을 앗아갔으며, 그 대신에 인간이 조금도 즐거워하지 않는 파편화된 작업을 제공했다고 분석한다. 그는 “간디가 말했듯이 대량생산이 아니라 오로지 ‘대중에 의한 생산’만이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 대중에 의한 생산체계는 근대의 지식과 경험을 가장 잘 활용해, 분산화를 유도하며, 생태계의 법칙과 공존할 수 있고, 희소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며, 기계의 노예가 아니라 인간에게 유용한 것으로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 이 기술은 부자들의 거대기술(super technology)에 비해 훨씬 소박하고 값싸며 제약이 적다”고 강조했다. 즉 하이테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민중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슈마허가 창설한 ITDG(중간기술개발집단)의 후신인 ‘프랙티컬 액션(Practical Action) 2016년 개발한 ‘식물재배양식장’기술을 방글라데시농업대학에서 파일럿실험을 하고 있다. 출처: Practiacl Action 홈페이지(https://practicalaction.org/aquageoponics-pilot)

슈마허는 실천가였다. 그는 1966년 런던에서 ‘중간기술개발집단(Intermediate Technology Development Group)’을 설립해 사람들의 자립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도 했고, 사후엔 그 조직이 ‘프랙티컬 액션(Practical Action)’이란 기구로 바뀌어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슈마허는 “인간의 실제 크기에 맞춰 기술을 인간의 실질적인 욕구에 맞게 재편하자”고 주장했다. 거대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자기파괴로 나아가기 때문에 기술이 인간을 파괴하는 대신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선 상상력과 함께 기술주의에 빠지지 않고 대안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슈마허는 『내가 믿는 세상』에서 “중간기술은 어떠한 장치도, 심지어 가장 현대적인 장치도 거부하지 않지만 동시에 이것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손쉬운 것은 무엇이건 사용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자리당 평균 장비에 100파운드(10만원대) 수준을 넘는 비용이 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중점을 둬야 할 산업으로는, 건설과 건설 자재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소비재산업, 농업장비, 중간기술장치산업을 들었다. 슈마허는 폐쇄순환계가 이뤄져서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도구와 또 다른 장치를 만들 능력이 있을 때에만 진정한 경제발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인간이 기술에 의해 도구화되거나 소외되어선 안 되고 ‘기술의 인간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슈마허가 직접 설립한 중간기술개발집단의 후신인 프랙티컬 액션(www.practialaction.org) 홈페이지를 보면 프랙티컬 액션에서 주로 보급하는 ‘빈곤 대처 기술’이 주로 소개돼 있다. 크게 지속가능에너지, 식량농업, 도시관개, 재해위험억제, 기후변화적응, 시장, 기술정의 등을 강조하는데 지속가능에너지와 관련해서는 소수력발전, 소규모풍력을 주로 보급한다. 이 중 소규모풍력의 경우 직경 50㎝~7ｍ 정도의 바람개비로 10~50W의 전력을 생산한다. 또 태양광 및 태양력 수도펌프가 있는데 100m 깊이의 우물에서 하루 3만 ℓ의 깨끗한 물을 펌핑하며, 또한 소똥 등을 모아 바이오매스로 연료화하고 있다. 식량생산과 관련해서는 ‘항아리 냉장고’를 좋은 예로 들 수 있는데 물이 증발할 때 열을 빼앗아가는 원리를 이용한 제품으로 항아리 두 개와 모래 흙 그리고 물만 있으면 채소나 과일을 21일 정도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자연 냉장고이다.

슈마허의 중간기술 개념은 여러 단계의 논의를 거쳐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로 다시 정의됐다. 적정기술은 넓은 의미로 ‘인간사회의 환경, 윤리, 도덕, 문화, 사회, 정치, 경제적인 측면들을 두루 고려하여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이고, 좁은 의미로는 ‘가난한 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적정기술은 1970년대 말 미국 카터 행정부의 진보적인 정치성향과 맞물려 태양에너지를 비롯한 재생에너지 개발 등 관련 활동들이 더욱 탄력을 받았으나 1980년대 등장한 레이건 행정부의 사회적 힘을 우선시하는 정치적 논리에 밀려 급격하게 힘을 잃어버리게 됐다고 한다.

	남아프리카의 어려운 물공급을 쉽게 해주기 위한 아이디어제품인 ‘Q드럼’ 제작사 홈페이지 메인화면(http://www.qdrum.co.za)

적정기술제품으로 잘 알려진 것으로 공익광고에도 등장하는 식수운반기구인 큐드럼(Q Drum)을 들 수 있다. 수원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아프리카 지역 특성에 맞춰 물통을 바퀴같이 굴릴 수 있도록 만든 것인데 한번에 약 70ℓ의 물을 넣어 운반할 수 있다고 한다. 적정기술제품은 ‘빈곤 대처 기술제품’으로 ‘빈곤비즈니스’의 시장을 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대기업인 글로벌기업은 최소 100달러 이하의 물건은 아예 만들지 않는데 반해 이러한 적정기술제품들은 10달러 이하의 가격에 빈민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슈마허의 중간기술 사상을 배경으로 우리나라에도 2006년 대안기술센터(Alternative Technology Center)가 설립됐다. 또한 적정기술교육기관으로 2008년 이후 한밭대학교 적정기술연구소, 한동대학교 그린적정기술연구협력센터 등이 활발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러한 슈마허의 중간기술 관점에서 원자력발전은 어떻게 볼 것인가?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원자력-구원인가, 저주인가?’라는 제목의 한 장을 할애해 원전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그는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이 인류에게 훨씬 더 큰 위험을 가져올 수도 있다”며 “문제의 초점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오늘날 생존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미래의 후손들에게까지 심각한 위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가 원전을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대규모 핵융합기술, 즉 거대기술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