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부산시당·원팀 알력 표면화’(지난 21일 자 국제신문 5면 보도).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예비후보 모임인 ‘원팀(One Team)’이 제안한 시의원 비례대표 후보 시민공모제를 둘러싼 당내 불협화음을 전한 기사이다. 자신들의 혁신 이미지만 생각한 시장 예비후보들의 언론 플레이에 시당이 발끈했다는 내용이다. 국회의원 선거든, 지방의회 선거든,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싼 당내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모양이다.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 파동이 대표적 사례. 친문재인 패권 이미지 불식을 위해 전격 영입된 김종인의 비상대책위원회는 거침없이 내달렸다. 주류 측 현역 몇몇을 탈락시키면서 당 지지율이 치솟자 ‘김종인 매직’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김종인 대표 비대위의 파죽지세도 비례대표 공천의 덫은 피하지 못했다. 당초 비대위가 야심차게 만든 공천안은 김 대표와 그가 미는 후보군을 당선 안정권에 대거 포진시켰다. 반면 주인 격인 친문계는 후순위로 밀렸다. 이에 최종 결정권을 쥔 당 중앙위원회는 비대위 안을 일축하고 투표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안을 만들었다. 김 대표를 14번에 배치하는 대신, 친문계는 대거 약진했다. 발끈한 김 대표는 대표직 사퇴설을 흘리며 자택 칩거에 들어갔다. 이에 문재인 전임 대표가 급거 상경, 자신이 삼고초려 끝에 모셔온 김 대표를 찾아가 유감을 표했다. 그러자 중앙위도 김 대표를 2번에 원위치하고, 측근 몇 명을 안정권에 재배치하는 중재안으로 겨우 사태를 수습했다. 뚜렷한 기준도, 치열한 내부 토론도 모두 생략된 비례대표 공천. 무엇보다 당내 역학 구도에 따라 밀실에서 적당히 나눠 먹기로 미봉하는 관행이 어김없이 되풀이돼버린 셈이었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도 지역구 공천을 둘러싼 이른바 ‘옥쇄파동’ 탓에 비례대표 갈등이 가려졌다뿐이지 상황은 마찬가지. 지원 유세에 나섰던 당 대표조차 현장 도우미로 파견된 비례대표 후보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후문이 돌 정도로 ‘깜깜이’ 공천이었다.

항상 그렇듯, 총선만 끝나면 잊혀버렸던 비례대표 공천 문제. 그러나 이젠 진지한 논의와 근본적 해결책이 모색돼야 한다. 다름 아닌 개헌 때문이다. 현재 개헌 시점 못지않게 첨예하게 여야 입장이 갈리는 대목이 권력 구조 개편. 의석 분포상 어차피 어느 한쪽의 완승은 어렵다. 그렇다면 정치적 타협은 불가피하다. 그 고리가 바로 권력 구조와 선거제도 ‘주고받기’이다. 이를테면 여당은 대통령 권한의 대폭 분산을 받아들인다. 야당은 현행 소선거구제 개편에 동의한다.

이와 관련, 주목되는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전체 의석을 정당투표의 득표율대로 나눠 갖되, 각 정당은 지역구 당선자를 먼저 배정하고 나머지를 비례대표로 채우는 방식이다. 정당 지지율과 의석 점유율 간 비례성이 높아져 소선거구제의 문제로 지적돼온 사표(死票)를 사실상 없앨 수 있다. 현재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연방의회 법정 의원정수 598명의 절반이 비례대표 의원. 300명에 가까운 비례대표 의원은 소속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배정된 의석수 중 정당이 자체 선정한 순번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다. 그만큼 비례대표 공천의 공정성, 투명성 등 민주적 절차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독일은 지역구뿐 아니라 비례대표 후보 선출을 반드시 당원 또는 대의원 비밀투표로 뽑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특히 공천 과정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선관위에 제출하고, 선관위는 민주적 방법에 어긋날 경우 후보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

반면 우리는 현재 공천방법을 각 정당 자율에 맡겨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항상 당 실력자 또는 역학 구도에 따라 좌지우지됐다. 그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채택된다면 상황은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 국회 의석 절반 또는 상당수 의원을 소수 실력자 입맛대로 낙점하는 상황이라면 정말 심각하다. 물론 실제 제도가 바뀐 뒤 정당법에 독일처럼 강제해도 된다. 하지만 비례대표 고질병이 법이라는 묘약 한 방으로 잡힐 것이라고 낙관할 수 있을까. 결과를 위해서라면 과정의 잘못쯤은 쉽게 눈감아온 것이 그간 우리 정치의 민낯 아니었던가.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부터 비례대표 선발의 공정성과 민주성 확보를 위한 각 당의 치열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여당인 민주당, 그것도 ‘민주성지’ 부산의 시당이라면 이왕 나온 시민공모제부터 진지하게 검토하고 실천할 것을 촉구해본다.

부산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