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해 그동안 우리 정부는 적절히 대응해왔는가. 이란 핵협상보다 더 길고 험악한 이 주제에서 우리는 전략적 오류를 범하지 않았는가. 노태우 정부는 우리의 평화와 통일 조건과 환경을 조성한다는 취지에서 먼저 남한의 비핵화 조치를 취했다. 그래서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실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1991년 주한 미군 전술핵무기를 전면적으로 철수시켰다.
그러나 북은 베이징 6자회담이 만들어낸 6개 항목 중 어떠한 것도 이행하지 않았다. 그 후 2007년 2·13회담에서 9·19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행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 조치도 이행하지 않았으며 핵무기를 제조하는 동시에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했다. 2·13조치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미북 관계정상화, 일북 관계 정상화를 포함한 동북아 평화 체제를 포함한 포괄적 비핵화 조치이다.
9·19 협상에서 2·13 협상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북의 비핵화를 목표로 삼지 않았다. 남북, 즉 한반도에 대한 비핵화를 겨냥해 온 셈이다. 정의용 특사가 이 문제의 차이를 잘 파악하고 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다시 말해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북한의 비핵화는 절대적 차이가 있다. 만일 정의용 특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비핵화로 설명했다면 트럼프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했을는지 의문이다. 정의용 특사의 발표문에도 북한의 비핵화란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원래 비핵지대화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이 개념은 최초로 중동에서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핵보유 위협에서 벗어나고 평화 지대를 확보하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했다. 그 후 많은 지역으로 확산됐다.
이러한 논리로 볼 때 한국은 1991년 비핵지대화가 이미 실현됐고 NPT의 모든 규약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한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더는 언급해서는 안 된다. 크리스토퍼 미국 협상대표가 6자회담 초기부터 이 용어를 받아들임으로써 지금까지 이 용어를 사용해 왔다. 그는 북한 정권과 그 속성 그리고 핵전략을 모르는 외교관이다. 이제라도 전략적 오류를 제거하기 위해서 이 용어를 회담에서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일 이 용어를 사용한다면 북한은 남북한 핵무기 존재 여부를 가려내기 위해 동시 사찰을 요구하거나 또는 평택 미군 기지의 집중적 사찰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이 제안을 수락할 수 없다면 북한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폐기(CVID)’ 방식을 받을 수 없다는 일종의 벼랑끝 전술을 다시 폄으로써 남북 정상회담도, 북미 정상회담도 성립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래서 4월 27일에 있을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력은 분명하게 북한의 비핵화의 필요성만을 강조할 것이 요청된다.
그 다음으로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용어 사용에서 혼돈이 없도록 할 필요가 있다. 최근 스웨덴에서 열린 북·스웨덴 외무상 회담이 우리의 주의를 끌고 있다. 이용호 외상과 스웨덴 외무장관 회담에 스톡홀롬 국제문제연구소(SIPRI)가 참여하여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것은 전통적인 중립국이 핵·미사일 문제에 거중 조정외교를 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을 일차적으로 타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거중 조정외교가 곧 개최될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전망을 밝혀주지 않을까 생각된다.
북한의 비핵화가 실현되면 북의 정권에 대한 위협이 사라지고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고, 그것이 적극적 평화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 환경에서 남북한 간 포괄적 교류 협력이 이루어지고 미북 관계 개선이 예상되고 점진적으로는 한국, 미국, 중국, 북한 4자가 휴전을 지속하고 있는 현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전환해 최고의 평화의 상징인 ‘카펫평화(carpet peace)’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료하는 국제적 선언으로 뒷받침되는 평화체제가 설립될 때 비로소 ‘카펫평화’가 이루어 질 것이다.
부산대 명예교수·한-유럽연합포럼 자문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