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많이 들여야 명품 건물이 되는 건 아니지만, 1750억 원으로는 쓸 만한 오페라하우스 장만에 역부족. 이왕 지을 바에는 ‘때깔 나게’ 짓는 게 낫지 않나. 콘텐츠는 더 중요. 시립오페라단 만들고 상설 공연할 ‘부산 레퍼토리’ 등 차근차근 준비해야.

건물 쓰임새와 운영방식 등 걱정은 끝이 없다. 경영 합리화랍시고 잡탕 행사와 상업시설을 끌어들이지 않을까 하는 기우에서다. 부산시는 예술인·인문학자들을 모아 난상토론이라도 벌여 보라. 북항서 아름다운 아리아 듣는 꿈 이뤄지게 해 달라.

그림=김자경 기자

부산 북항의 재개발 사업이 탄력을 받는 모양이다. 개발 모토가 ‘사람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글로벌 신해양산업 중심지 육성’이라던가. 7개의 특화지구로 나눠 비즈니스·해양금융 지구를 조성하고 해양산업, 레저산업을 유치한다고 한다. 해양문화의 메카로도 육성한다고 들었다.

나도 부산 사람이니 우선은 배가 절로 불러지는 듯 흐뭇한 기분이 들밖에. 지난달 16일 ‘부산항 미래비전 선포식’에 참석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북항 1단계 사업’을 임기 중인 2022년까지 끝내겠다고 약속했다. 가덕도 신공항으로 역대 정권에게 뒤통수를 맞아 마음 상한 고향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 될지 어떨는지는 두고 봐야 알 일. “슬리퍼 끌고 가서 놀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대로 부산 사람들이 편안하게 즐길 친수공간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부산시와 해양수산부가 기업, 민간전문가와 상의해 잘 만들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이달 말로 그곳에서 첫 삽을 뜬다는 오페라하우스에 대해선 나 같은 문외한도 몇 마디쯤은 할 말이 있다. 몇 년 전 부산시 문화예술위원이었을 적에 몇 마디 말부조를 한 적도 있고, 이런저런 매체에 오페라하우스에 대한 단상을 기고한 적도 있어 나름대로는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 두겠다.

부산오페라하우스가 주는 이미지는 낭만적이다.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넘치는 예술의 도시, 배를 타고 들어오면 산뜻하게 단장된 친수공간에 꿈처럼 화려한 오페라하우스가 첫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항구…. 관광객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거고 자동차의 경적과 매연이 뒤덮은 살풍경한 도심은 ‘인간의 얼굴’을 가진 거리로 탈바꿈하리라…. 글쎄, 나도 얼른 그런 시절이 오면 좋겠다.

그런데, 좋아만 하기엔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 있다. 따져보면 부산오페라하우스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필요의 산물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부산의 오페라 공연 수요가 넘쳐나서 새 공간이 필요해진 게 아니라 2008년 롯데그룹에게서 1000억 원을 기부받기로 한 부산시가 그 돈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랴부랴 계획을 세웠던 게 사실이다.

재벌기업이 종잣돈을 댔든, ‘랜드마크’란 단어가 상징하는 토목주의적 발상이든, 좋은 공연시설이 늘어난다는 것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하지만 언뜻 드는 걱정은 이 오페라하우스가 주위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품격 있는 ‘부산의 얼굴’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 2만9542㎡의 금싸라기 땅에 건물 면적 5만1617㎡,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라는데 전체 예상 금액이 1750억 원이라고 한다. 나랏돈과 부산시 돈이 적지 않게 들어가긴 해도 ‘명품’ 오페라하우스 건축비치고는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조개껍데기 모양의 외관을 가진 그 유명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1957년부터 1973년까지 16년에 걸쳐 당시 돈 1억 달러란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갔다. 각각 2003, 2005년 문을 연 ‘싱가포르 에스플러네이드’와 코펜하겐 오페라하우스도 그때 돈 5000억 원씩 들었다. 2008년 개관한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는 7억 달러, 2007년 개관한 베이징 국가대극원이 30억 위안(약 5000억 원)이 들었다고. 돈을 많이 들여야 꼭 좋은 건물이 되는 건 아니지만, 명색이 세계적 오페라하우스라면 적어도 요즘 돈으로 7000억~8000억 원은 들여야 하는 모양이다.

2012년쯤이었던가, 내가 끼었던 어떤 공청회에서 쓸 만한 오페라하우스를 장만하려면 아무리 줄잡아도 3000억 원은 쥐어야 할 거란 건축 전문가의 견해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2013년 부산시가 2629억 원으로 책정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그새 900억 원이나 깎여 있어서 실망스러웠다. 2011년 센텀시티에 들어선 영화의전당에 1700억 원을 들였으니 부산오페라하우스도 고만한 규모 아니겠나. 1750억 원이 적은 돈은 물론 아니다. 부산시도 쓸 곳이 많은 판에 돈을 더 여투어 내기 어렵긴 할 거다. 그렇더라도 이왕 지을 바에야 미래를 내다보고 ‘때깔 나게’ 짓는 게 낫지 않을까. 그냥 공연장이 아니라 ‘부산판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랄까, 북항의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니 하는 소리다.

공사비보다 더 중요하게 따져봐야 할 대목도 있다. 이 집이 얼마나 쓰임새가 있을 건가 하는 의문 말이다. 부산시가 처음 건립 계획을 밝혔을 때도 지역사회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제대로 된 오페라 한 편 무대에 오르지 않는 도시에서 건물만 덜렁 지어 무얼 하느냐는 거다.

그동안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모르지만, 오래전 개인 기획자가 부산의 성악가들로 급조한 엉성한 오페라 공연의 유료관객이 거의 없어 공짜 표가 돌아다녔던 시절을 지켜봤던 터다. 오페라하우스를 지어낸다 하자. 그럼 그걸 채울 콘텐츠는? 개관기념 공연부터 외국이나 서울의 오페라단이나 불러 무대를 채울 건가.

내 개인적으로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오페라하우스를 만들려거든 제대로 된 시립 오페라단부터 창설하라는 소리를 해 왔다. 오페라단도 없이 오페라하우스부터 짓나? 주객전도 아닌가? 제대로 된 오페라단 하나 갖기가 그렇게 쉬운가? 부산의 문화공무원들은 오막살이 한 채 짓듯 성악가 너덧을 상임 단원으로 두고, 그때그때 시립합창단원을 불러다 채우는 방식을 궁리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서야 어느 시민이 비싼 티켓 사서 찾아올까. 3년 후면 개관이다. 지금도 늦다. 지금부터라도 시립오페라단을 만들어 차근차근 준비에 나설 일이다.

또 있다. 상설 공연할 만한 ‘부산산(産)’ 레퍼토리도 한두 개는 있어야 하지 않나. 천 날 만 날 ‘라보엠’이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나 공연하나? 2억~3억 원 들여 얼렁뚱땅 의뢰한다고 명품이 나오는 게 아니다. 치밀한 기획과 오랜 준비를 거쳐야 한다. 개관 기념 연속공연에서 부산을 노래한 오페라 한 편 없는 장면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글쎄, 걱정은 끝이 없다. 365일 오페라로 채우기는 어려운 데다 소공연장도 만들 텐데 그건 또 어떻게 채우나? 부산시는 이 시설이 오페라만을 위한 건 아니고 발레, 무용, 뮤지컬, 연극도 할 수 있는 다목적용이라고 하기는 했다. 아마 그럴 수밖에는 없을 거다. 그렇더라도 쓰임새에 대한 고민은 더 필요하리라는 생각이다. 부산엔 문화회관, 시민회관, 국립국악원 등등 중대형 공연시설이 여럿 있다. 그런 차에 오페라하우스까지 고만고만한 공연들을 잡탕으로 섞어 올리는 건 좀 마뜩잖아 보인다. 부산시는 음악은 물론 타 장르 예술인들과 인문학자들을 모아 머리를 맞대고 건물의 쓰임새와 운영방식에 대한 난상토론이라도 벌여 보라. 민간 운영위원회를 꾸려도 좋다. ‘집단지성’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 아닌가.

개관 후 운영비도 염두에 둬야 할 일. 인건비까지 치면 해마다 100억 원대는 들지 않을까. ‘보몰의 법칙’이란 게 있다. 공연 예술은 대량생산할 수도 없으려니와 장기공연을 하더라도 제작비가 줄지 않는다는 법칙이다. 공연예술에 공적 지원이 꼭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부산시는 그 대목은 지금 어떻게 셈을 잡고 있는지 궁금하다. 건물만 덜렁 지어놓고 내팽개쳐선 안 될 일이 아닌가. 경영 합리화랍시고 정체불명의 잡탕 행사에 장소를 빌려주거나 온갖 음식점과 상업시설을 끌어들이지 않을까 하는 기우가 생겨 하는 말이다.

어쨌거나 오페라하우스를 토목 관점에서 볼 일은 결코 아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도 아니다. 정치인들이 우르르 몰려가 테이프를 끊고선 나 몰라라 뒷짐질 일이 아니란 거다. 시장 재선에 도움이 될 송덕비 하나 장만한 것쯤으로 치부해서도 안 될 일이다. 1000억 원을 들여 신선대부두 뒷산에다 ‘부산판 자유의 여신상’이라나 뭐라나 하는 흉물 덩어리를 만들겠다고 나선 부산시 아닌가. 그건 또 어떻게 돼가나 모르지만 솔직히 부산 공무원들의 문화적 안목이 미덥지 않다.

이왕 첫 삽을 뜨기로 했으니 알뜰하면서도 기능적이고, 그러면서도 품위를 갖춘 ‘명품 오페라하우스’가 들어서기를 기대한다. 꽃 피는 봄날 저녁, 혹은 바람 소슬한 가을날 새 단장한 북항의 거리를 거닐다가 호주머니를 털어 아름다운 아리아를 듣겠다는 꿈이 이뤄지게 해 달라.

소설가·경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