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은 극한에 이르면 돌아오기 마련이다. ‘돌아옴은 도의 움직임(反者道之動·반자도지동)’이라는 노자의 가르침처럼. 지난달 30일 오후, 고즈넉한 에메랄드빛 봄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경남 통영국제음악당은 만물 순환의 진리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데올로기의 장벽에 가로막혀 반평생 해외를 떠돌았던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은 이날 유해로나마 고향에 돌아왔다.

이날 밤,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음악회가 열렸다. 몬테베르디의 바로크 오페라 ‘율리시즈의 귀향’과 우리 전통 가곡을 접목한 음악극 ‘귀향’의 초연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트로이전쟁에 참전했다가 20년간 유랑하며 온갖 고초를 겪은 율리시즈의 그리스식 이름 ‘오디세우스’에는 ‘증오받는 자’라는 뜻이 있다. 친북 인사로 몰려 오랜 세월 고향에서 배척당한 윤이상의 운명과 겹쳐진다. 하지만 오디세우스가 그랬듯, 시련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우리의 거장은 마침내 귀향했다.

윤이상의 귀향은 70년 분단의 빙하기 끝에 찾아든 해빙의 햇살을 타고 온 것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그 세월에는 분단을 극복하려는 그의 지난한 노력도 숨 쉬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곤경과 부자유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는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롭게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는 작고한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와의 대담(‘윤이상과 나’)에서 자신의 음악 정신에 대해 이같이 얘기했다. 그의 대표작인 오페라 ‘심청’에서 심청의 환생은 이를 웅변한다. 거기에는 조국의 통일과 자신의 귀향에 대한 염원이 서려 있다. 린저는 그의 음악에 대해 “평화를 추구하는 도(道)의 철학”이라고 했다.

윤이상이 고향에서 영면에 든 이튿날 남한 예술단이 평양으로 갔다. 예술단에는 월남 실향민 2세인 가수 강산에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그의 아버지는 함경남도 출신으로, 1·4후퇴 때 월남하면서 가족과 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고향 생각 나실 때면/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아버지/이렇게 얘기했죠/죽기 전에 꼭 한 번만 가봤으면 좋겠구나/라구요’. 그의 히트곡 ‘라구요’에는 그런 아픈 가족사가 담겼다. 그도 방북 길에 오르면서 ‘귀향’이란 단어를 생각했을 게다.

어디 강산에뿐이랴. 수많은 실향민과 그 가족들도 같은 심정이지 않았을까. 자연스레 2014년 1월에 했던 실향민 취재가 떠올랐다. 당시 47년 만에 다시 들어 올린 영도다리를 중심으로 취재를 했었다. 영도다리는 6·25전쟁 때와 휴전 후 실향민들이 헤어진 가족과 친지를 찾아 틈만 나면 들렀던 만남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가수 현인의 노래가 머릿속을 맴돌던 무렵이었다. 이별한 가족 이름이 ‘금순’이거나 본인 이름이 ‘금순’인 실향민을 여러 사람 만나다 보니 애틋함이 더했다.

취재 대상 중에 강현우라는 분이 있었다. 함남 홍원이 고향인 그는 1·4후퇴 때 월남했다. 막내 삼촌과 함께 집을 나섰다가 흥남부두에 이르기 전에 헤어져 혈혈단신이 됐는데,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의 이름이 장금순이라고 했다. 그는 삼촌을 만날 수 있을까 해서 월남 후 7~8년간 1주일에 한 번꼴로 영도다리에 나갔었다. ‘강현우가 기다림. 보시면 다리 밑 계단으로’라는 벽보를 수없이 붙였다고 했다. 취재 당시 81세였던 그는 지금 건강한지 궁금하다.

그보다 처지가 더 딱한 실향민도 있었다. 조금순이라는 분은 취재차 만났을 때 93세였는데, 요양병원에서 3년째 투병생활 중이었다. 피란오다 함남 북청역에서 인산인해의 북새통에 생이별한 9살 아들을 애타게 그리워했었다. 혹여 소식을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봐 영도다리에 수없이 나갔었다고 했다. “내가 죽기 전에 아들을 꼭 한 번 봤으면 좋겠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리던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는지도 모른다.

윤이상의 귀향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기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산가족들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4년 전 취재 당시 12만9035명의 남한 상봉 신청자 중 생존자가 7만2491명(56.2%)이었다. 그런데 지난 2월 현재 5만8261명으로, 19.6%나 줄었다. 생존자 중 80세 이상이 64.5%이며, 90세 이상도 23%나 된다. 그동안 북한의 가족을 만난 경우는 4185건에 불과하다.

생존자들이 생전에 북한의 가족과 만나려면 상봉인원을 연간 730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한다. 이달 27일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의제에 올려 하루빨리 상봉을 재개해야 하는 이유다. 그들이 귀향은 못 한다 해도 살아서 가족을 만나 긴 이별에 마침표를 찍도록 해줘야 한다. 이게 우리의 사명이자 도리가 아닐까.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