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이 6·13지방선거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했다. 이로써 서울시장 선거는 1995년 1차 지방선거 이후 23년 만에 ‘3자 대결’ 구도로 치러지게 됐다. 1995년에는 정원식(민자당), 조순(민주당), 박찬종(무소속) 세 후보가 맞붙었다. 결과는 진보진영 민주당 조순(42.4%)의 승리였다. 2등은 중도를 표방했던 박찬종(33.5%), 집권당인 민자당 정원식 후보는 20.7%를 얻는 데 그쳤다.
얼마 전 홍준표 대표가 김문수 전 지사를 전략공천한다는 말이 돌자 민주당에는 화색이 돌았다. 안철수의 출마가 기정사실로 되면서 쌓였던 근심이 일거에 사라지는 분위기다. 만약 안철수와 ‘1 대 1 대결’ 구도가 되면 아무래도 힘든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김문수가 나온다니 이처럼 고마울 데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70% 안팎을 기록 중이다. 보수진영은 거의 지리멸렬이다. 이번 기회에 지방권력까지 확실히 장악할 수 있다. 그런데 안철수가 문제였다.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일 것이다.
홍준표 대표는 무슨 생각에서 김문수 카드를 뽑아 들었을까. 당선이 목표가 아닌 것 같다. 지방선거 이후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자유한국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다. 지방선거 성적에 따라 각 당과 각 정파 그리고 주요 차기 대선주자들의 위상이 뒤바뀐다. 그런데 만약 안철수가 서울시장이 된다면. 중도·보수진영의 주도권은 자유한국당과 홍준표가 아니라 바른미래당과 안철수에게로 넘어간다. 그러니 어차피 내가 될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강력한 경쟁자가 떨어지는 게 낫다.
안철수의 계산은 무엇일까. 안철수도 정계에 입문한 지 7년이다. 그동안 산전수전 다 겪었다. 공중에 붕 떠보기도 했고 뒤통수도 맞아봤다. 당 대표로 2014년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이번 서울시장선거에서 이기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패한다 해도 2등만 하면 남는 장사다. 설사 지더라도 안타깝게만 지면 그동안 쪼그라들기만 했던 추세를 일거에 만회할 기회다. 앞으로 2020년 총선도 2022년 대선도 있다. 이기든 지든 안철수로서는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다.
현실 정치에서 만고불변의 철칙이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그래서 김대중-김종필의 DJP연대가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연대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구현이다. 서로의 다름은 인정하는 가운데 공통분모를 찾아서 양쪽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연대는 ‘1+1=2’가 아니다. 하기에 따라서는 엄청난 시너지효과가 있다. 특히 선거에서는 파급효과가 전체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자유한국당 내부에도 선거연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분명 있다. 하지만 대세를 형성하지는 못한다. 바른미래당도 처지가 비슷하다. 복잡한 내부 사정, 지지층의 반발 등으로 어느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고 나서지 못한다. 야권의 분열로 패배가 뻔히 눈에 보이는 데도 오불관언이다. 현역 국회의원들은 2020년 21대 총선만 눈에 보일 뿐이다. 그때가 되면 모든 게 달라질 것이란 막연한 기대만 하는 것 같다.
최근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5·9 대선 때의 비화 하나를 소개했다.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간에 후보 단일화 논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박지원 의원 본인과 김무성 의원 간에 깊은 대화가 있었다고 한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만약 그때 안철수-유승민 간 후보단일화(지금 두 사람은 한솥밥을 먹고 있다)가 이루어졌다면. 승패를 뒤집기는 어려웠겠지만 문재인 후보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는 강력한 야당으로 집권당의 독주를 견제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안철수-김문수의 선거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인은 김무성이 거의 유일하다. 경륜으로 봐도 그렇고 발언권으로 봐도 그렇다.
더욱이 차기를 생각하는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김무성은 이미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를 주도하면서 대선 불출마선언을 했다. 마음을 비웠기에 큰 틀에서 긴 안목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향후 20년 정치지형을 가름하는 분수령이다.
이제 선택은 정치인 각자의 몫이다.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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