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대동강 하구에서 약탈을 일삼다 주민들의 공격에 많은 미국인 승무원이 목숨을 잃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북한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미국과의 싸움에서 첫 승리를 거둔 기념비적 성과라는 평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유치원 때부터 이뤄지는 반외세 교육에 반드시 이 사건을 반미투쟁의 출발점으로 거론한다.

미국이 사사건건 자신들 발목을 잡고 있다고 믿는 북한에 미국은 하늘 아래에서 절대 같이 살 수 없는 존재다. 외부 위협이 느껴지면 어김없이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작업이 진행된다. 지난해 미사일 도발로 국제연합(UN) 주도의 제재가 강화될 때도 미국 규탄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는 것이 국제사회라지만 요즘 북미 관계를 보면 이처럼 적절한 표현도 찾기 힘들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전후해 양측 간 화해 움직임이 보이더니 지난 9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다음 달이나 오는 6월 초에 정상회담을 하자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미 대통령의 입에서 구체적 시기가 나온 만큼 회담 개최는 거의 기정사실이 된 셈이다.

이제 시선은 양측 정상이 만날 때 과연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갈까에 쏠린다. 또 어디에서 회담이 열릴지도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외신에 따르면 북한은 평양 개최를 고집했다고 한다. 북미 정상이 함께하는 역사적 행사를 평양에서 열어 북한을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시키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성사가 된다면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평양에서 성조기가 휘날리는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이 같은 제안은 말장난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면 군 의장대 사열에서부터 행사장 이동 등이 이뤄질 때 곳곳에서 성조기가 게양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미국은 철천지 원수’ ‘미국은 승냥이’ 등과 같은 섬뜩한 구호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주민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상상 이상의 충격을 던져줄 게 뻔하다.

당연히 북한이 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임은 미뤄 짐작되는 일. 미국 역시 북한의 완전한 핵 포기라는 결과를 도출해내기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굳이 평양까지 찾아가는 모험은 삼갈 것이 분명하다. 이러니 회담 장소를 둘러싼 북미 간 힘겨루기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반도 비핵화로 가는 길은 이처럼 처음부터 가시밭 투성이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