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진료실에 관절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온 아들이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어머니께서 관절이 불편하시고 연로하신데 힘들기만 한 농사일을 계속하시고, 우리 집으로 모셔서 편안하게 해드린다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하신다.” 일을 못 하게 당부해달라는 요지였다. 반면 그 어머니는 관절이 성하신 곳이 없는데도 농사를 지어 자식 집에 보내는 즐거움을 놓지 않고 싶다고 한다. ‘과연, 이 어머니가 시골 일을 접고 아들 집에 기거하면 정말로 건강해지고 행복해질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 보았다.
사람의 즐거운 상태를 알 수 있는 기능성 뇌 MRI 연구가 있다. 중추신경계와 자율신경계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과 의학적인 연구를 종합하여 관찰한 결과, 즐거움에 의한 신체적인 반응으로 면역력이 증강하고 질병 치료 특히 바이러스나 암 치료에 있어서 NK세포(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면역세포) 활성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보고이다.
심리학·인문학 연구에 의하면 즐거운 상태를 유지하려면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첫째, 즐거움은 자기 주도적이며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간혹 ‘누구 때문에 즐겁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이 자식이든 배우자이든 누구든 그에게 즐거움을 맡기거나 빼앗기지 말고 오로지 자기 주도적인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물론 타인의 행동이나 말 탓에 자신의 기분이 나빠지고 부정적으로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자기의 기분이 지배되어 뇌가 스스로 피해자라고 인식하고 부정적인 사고를 하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130년이 넘도록 짓고 있는 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석공의 이야기가 있다. 임금에 비해 고되고 일이 힘들어도 석공은 불평하지 않는다. 위대한 건축에 동참한다는 자부심과, 완공되었을 때 이 건축물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이 기뻐할 것을 생각하며 묵묵히 즐겁게 일한다는 이야기다. 즐거움의 자기주도권을 가진 경우이다. 얼마 전 끝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잠깐 만에 끝나버린 경기를 위하여 수년간 피와 땀을 흘린 선수의 “비록 금메달은 놓쳤지만 최선을 다하였기에 아쉬움이 없다”는 인터뷰를 보았다. 중요한 경기나 힘든 상황 중에 흔히 하는 ‘이 상황을 즐기자!’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둘째, 즐거움은 함께해야 진정한 즐거움이 된다는 것이다. 혼자서도 즐거운 생각, 마음먹기, 즐겁게 말하고 행동하기가 가능하지만 함께할 때 누리는 즐거움의 크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 대상이 긍정적인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그 즐거움이 더할 것이다. 등수에 들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함께 달리는 마라톤 경기, 힘이 들지만 직접 지은 농산물로 자식들을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즐거움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많은 사람이 버킷리스트를 만든다.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갈까 보다, 무엇이 즐겁고 행복하겠냐고 생각하며 만드는 버킷리스트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즐거움이야말로 삶의 동력이고 추진력이다. 즐거움을 잃어버린 삶을 회복하기 위하여 예술치료, 규칙적인 운동, 건강한 먹거리, 웃음 치료 등등이 동원된다. 이러한 치료는 즐거움의 자기주도권 훈련과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만드는 과정이다.
진료실에 잠시 다녀간 어떤 어머니를 보면서 지금 나의 즐거움은 무엇인지, 즐겁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되짚어 보았다. 결과로서 기쁨은 잠시이지만 과정으로서 누리는 즐거움은 우리의 마음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봄이다. 추운 겨울을 견딘 나무에서 꽃이 활짝 피었다. 나무에게 겨울은 단지 추운 시절이 아니라, 꽃을 피울 것을 기대하는 즐거움으로 지낸 시절이었을 것이다. 즐거움의 자기 주도권을 가지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즐거움을 놓지 말자. 다른 사람과 더불어 즐기자. 새봄을 맞이하는 지금 이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면 어떨까.
늘빛영상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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