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세간의 관심이 크다. 주식시장에선 관련 회사의 주가가 급등하고, 정부와 시민단체도 경계와 감시의 눈초리를 던진다. 재벌들은 외부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내부 사안인데 감 놔라 배 놔라 간섭이냐”며 불만이다. 사실 외국에서는 주주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에 별 관심이 없다. 경제적 측면에서 지배구조 개편으로 실적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기업의 본질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선 비정상이라고 할 만큼 관심이 높다. 이런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재벌의 비중이 압도적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30대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육박하고, 수출은 60% 이상을 담당한다. 주식시장을 보아도 30대 그룹 상장사의 시가총액은 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재벌의 일거수일투족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배구조 개편의 이면에 대부분 경영 승계라는 목적이 숨겨져 있는 점이다. 겉으로는 출자구조를 바꾸는 것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재산과 경영권을 대물림하는 복선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현재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거나 준비 중인 삼성, 롯데,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과 같은 곳은 경영 승계를 앞둔 재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외국에서는 경영 승계나 재산을 물려주는 작업은 주식을 자식에게 넘기면 그만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 재벌들은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 출자구조 개편에 매달린다. 이는 우리 재벌이 지닌 태생적 한계가 원인이다. 대부분 설립 초기 대주주가 적은 자본으로 회사를 세우다 보니 덩치가 커질수록 대주주 지분은 상대적으로 점점 줄었다. 결국 대주주는 순환출자나 상호출자 구조를 이용해 지배권을 유지했다. 2016년 기준으로 30대 재벌의 주주별 지분 분포를 보면 대주주 지분은 평균 3%인데 비해 계열사와 특수 관계인은 55%다. 계열사의 지분을 이용해 경영권을 행사하는 셈이다.
사정이 이러니 순환출자나 상호출자를 무작정 해체하면 경영승계는 고사하고 지배권마저 잃을 위험에 처한다. 그렇다고 증여나 상속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재산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면 지분은 반 토막 난다. 그래서 대주주의 지배권을 지키고 재산을 물려주는 대안으로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최근 지배구조 개편에 나선 재벌을 보면 먼저 대주주 지분이 많은 회사와 핵심 회사를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눈 뒤 투자회사끼리 합쳐서 지주회사를 만들어 이 회사에 대주주 지분을 몰아준다. 현물출자라 불리는 이 방법은 절차가 간단하고, 합병비율을 적절히 맞추면 세금도 거의 내지 않으면서 합법적으로 대주주 지분을 늘릴 수 있다. 여기에 순환출자나 일감 몰아주기도 덤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 재벌들에게는 ‘신의 한 수’인 셈이다.
재벌과 사회의 충돌은 여기서 비롯된다. 사회는 정당한 대가를 치르라는 것이고, 재벌은 저비용으로 재산과 경영권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SK와 SK C&C의 합병비율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배경이다.
재벌과 사회의 충돌을 해결하는 합리적인 도구는 법일 것이다. 이와 연관된 현행법은 상법, 세법, 자본시장법, 공정거래법, 회계법 등 매우 많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법은 양쪽의 이해를 모두 충족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당성이나 형평성은 법으로 보장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재벌의 지배구조 개편이 불법도 아니기 때문에 법으로 규제하기도 불가능하다. 때로 법의 잣대는 양쪽 모두로부터 배척을 당한다. 사회는 법을 재벌의 편이라고 주장하고, 재벌은 법이 너무 편협해서 기업을 과도하게 옥죈다고 맞선다. 결국 해결은 사회와 재벌의 양심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 사회는 재벌의 지배구조 개편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재벌은 사회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이해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물론 해결의 열쇠는 지배구조 개편의 주체인 재벌이 쥐고 있다. 먼저 재벌이 사회 이익과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당장 재벌들에게 비용으로 다가오겠지만, 미래의 지속적인 발전을 담보하는 투자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재벌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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