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뜻하지 않는 우연한 과학적 발견이나 발명이 많다. 1928년 플레밍은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물질을 찾다가 포도상 구균을 배양하던 접시를 밖에 놔두고 휴가를 다녀왔더니 푸른곰팡이가 생기고 포도상 구균이 모두 녹아 없어진 현상을 발견했다. 아래층에서 다른 사람이 곰팡이 연구를 하고 있었던 것이 항생제의 시초인 페니실린을 발견하는 행운을 만든 것이었다. 소에서 우유를 짜는 사람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고 소는 천연두보다 약한 유사한 병이 많았고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빨리 회복되는 것을 발견한 제너가 이 병에 걸린 소의 고름을 사람에게 미리 접종한 결과 천연두를 막을 수 있었다.
오늘날 각종 예방접종에 사용되어 인류의 건강을 크게 개선시킨 백신은 이렇게 출발했다. 이외에도 진공튜브로 음극선을 연구하던 뢴트겐이 자기 손뼈가 비치는 것을 우연히 발견해 엑스레이 촬영이 시작되었다. 위험한 폭발물로 광산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나 조금만 흔들려도 폭발하던 니트로글리세린이 규조토에 스며드는 것을 보고 다이너마이트를 발견한 노벨도 유명한 사례이다. 1990년대 초 화이자사가 심장병 환자를 위한 혈관 확장제를 개발하다가 비아그라를 발견한 것, 석탄 부산물인 콜타르와 인, 암모니아 등의 반응을 실험하다가 손을 씻지 않고 집에 돌아와 손에서 단맛이 나서 인공 감미료 사카린을 발견한 것, 미국 레이시온사에서 군사용 레이더를 개발하다가 초콜릿이 녹은 것을 보고 전자레인지를 만든 것, 굿이어가 고무 황 납의 혼합물을 실수로 난로에 떨어뜨려 굳어버렸으나 탄성이 있는 것을 보고 내한 내열성 고무를 발명한 것 등 수없이 많은 사례가 있다. 이런 뜻하지 않은 우연한 발견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한다.
지난 3월 중순 양자홀 효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클리칭 교수와 핵자기공명을 단백질 구조분석에 응용하는 방법을 개발한 노벨 화학상 수상자 뷔트리히 교수를 초청해 카이스트에서 강연 및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분들도 뜻하지 않은 과학적 발견을 강조했다. 처음부터 이것을 개발하려고 의도하거나 예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 과학적 세렌디피티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부단한 노력의 과정에서 우연한 발견이 생겼다. 즉, 열정과 집중이 없이는 우연도 없다는 것이다. 둘째, 남이 해보지 않은 다양한 창의적 시도를 하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셋째, 열린 마음이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문화, 실패를 활용할 줄 아는 문화가 필요하다. 실패작이 나중에 훌륭한 성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넷째, 폭넓은 지식과 경험과 함께 통찰력이 필요하다. 우연히 마주친 뜻하지 않는 사건을 보고 그 가치를 알아보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주변에 이러한 기회와 행운을 무심코 지나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안목과 통찰력은 폭넓은 경험과 지식과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만 생긴다. 다섯째, 자유롭게 즐기면서 연구하는 환경과 문화가 필요하다. 매번 단기적인 가시적 실적과 통계만 강요하고 질책해서는 절대로 창의적 발견이 생기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와 함께 각기 절대불변으로 알았던 에너지와 질량이 서로 변환되는 위대한 원리를 발견하게 된 것은 특허청 서기라는 한직에서 일하면서 취미생활로 자유롭게 상상하고 즐기면서 꾸준히 노력한 덕분이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과 과학교육을 돌이켜보자. 우리에게는 위에서 말한 점들이 모두 부족하다. 즉, 세렌디피티가 생길 가능성이 아주 낮다. 경제규모나 인구가 세계 10위권에 육박하고 GDP 대비 최고수준의 연구개발 예산을 투입하는 데에도 노벨상이나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신기술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알 만하다. 연구개발은 아파트 건설공사와는 다른데도 매년 논문, 특허를 쏟아내고 목표 진도율을 달성하라고 닦달한다. 외국에서 이미 한 연구를 모방하여 안전하게 연구비를 따내고 성공했다고 보고된다. 사지선다형 등으로 잘 설계된 문제에 정답만 찾는 교육으로 의문을 갖거나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고 문제를 찾을 줄 모르고 질문할 줄 모른다. 정말 창의적 학생들은 일찌감치 도태되고 있는 것이다. 과학적 세렌디피티, 창의적 발견을 위한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
KAIST 산업 및 시스템 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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