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 같은 존재’라더니 그 말이 지금처럼 딱 맞아 떨어질 수가 없다. 여당의 낙승으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 속에 다소 무미건조할 것으로 보였던 6·13 지방선거 판도가 갑자기 요동을 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 덕분에 이번 선거에서는 흥을 돋울 만한 게 별로 없다던 말들도 뒷전으로 쏙 들어가게 됐다.

잠잠하던 선거판을 뒤흔드는 단초를 제공한 쪽은 공교롭게도 앞서 나가고 있다는 여당 측이다. 한 달여 사이에 대형 악재가 잇달아 터졌다. 차기 대권후보로 꼽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성폭행 의혹으로 자신의 정치인생을 마감해야 할 정도로 치명상을 입었다. 금융개혁 적임자라던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은 ‘후원금 땡처리’ 등의 문제로 취임 보름 만에 낙마하는 수모를 당하기에 이르렀다.

‘드루킹 사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김경수 의원 건도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위험요소다. 김 의원은 극구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나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어제 경남지사 출마를 공식 선언했으나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찮을 것이 분명하다. 6월 선거 구도가 민주당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이런 일련의 일들에 대해 걱정은 하면서도 급격한 민심이반은 생기지 않을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그 이면에는 여전히 70%대에 육박하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리얼미터가 지난 16~18일 여론조사를 했더니 문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답변은 67.6%로, 지난 주보다 0.8%포인트가 올랐다. 김기식 및 드루킹 사건이라는 부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은 떨어지지 않았다.

민주당의 지지율도 여전히 강세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난 3주 동안 줄곧 하락세를 유지했으나 이번 주에는 53.2%를 기록하며 반등에 성공했다.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과의 격차는 배 이상이다. 한국당은 댓글 조작 의혹 등을 물고 늘어지면서 대대적인 대여 공세를 펼쳤음에도 오히려 지지율은 21.9%에서 21.4%로 하락했다. 동시에 4주 연속 이어오던 상승세도 중단됐다.

이쯤 되니 여당 처지에서는 이 상태만 계속 유지된다면 선거에서 무난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 확신할 법도 하다. 하지만 여당이 대통령 및 정당 지지율과 선거 결과가 정비례할 것이라고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이는 큰 착각이다. 이번 주 대통령 지지율 상승만 해도 남북 정상회담 때 종전 선언 논의 등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긍정적 소식이 부정적 요소를 잠시 덮은 것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게다가 국가 차원의 이런 대형 현안은 시의성이 있는 것이어서 향후 지방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이 예상외로 작을 가능성도 높다.

여당의 오판은 또 있다. 현재와 같은 높은 지지율이 전적으로 자신들의 노력 때문이라는 맹신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제1 야당인 한국당이 제대로 중심을 잡고 민주당의 대항마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여당으로서는 한국당이 목소리만 높일 뿐 정작 국면을 전환할 만한 계기는 잡지 못한 채 지리멸렬한 것을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형편이다. 결국 여당의 인기는 상대방의 무능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그럼에도 돌발 상황에 대비하는 청와대와 여당의 자세는 안이하다. 김기식 사태만 해도 각종 의혹 제기에 청와대는 버티고 버티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위법 판단 이후 사표를 수리했다. 인사검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는 민정수석실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드루킹 사건에 대해서도 누군가의 불법행위로 정부·여당이 피해자가 된 게 핵심이라며 발을 빼고 있다. 민주당 측도 댓글 조작은 개인의 일탈행위일 뿐 당과 청와대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여당으로서는 잘잘못을 떠나 이 시점에서 야당 공세에 무차별적으로 밀릴 경우 자칫 선거정국의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게 당연하다. 또 정면으로 난국에 맞서는 것이 지지층 결속에 더 효과적일 거라는 판단을 했을 공산도 크다. 그러나 민심의 흐름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식의 계산이 기대 만큼의 성과를 가져 오리라고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여당은 교만함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문제가 불거져도 명쾌한 해명 대신 “국민 눈높이에는 부족하지만 당시 관행에 비춰볼 때 잘못은 아니다”라는 식의 변명만 늘어놓는다면 지금의 높은 지지율은 금방 무너질 모래성에 불과하다. 열흘 붉은 꽃은 없으며 영원함을 누리는 권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겸손을 잃으면 6월 지방선거는 여당에 생각하기조차 힘든 역전패를 안길지도 모른다.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