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세상을 떠나신 지 10년이 되었다. 선생의 대표작 ‘토지’의 주요 배경지인 하동 평사리에서는 한국작가회의와 한국소설가협회 등과 힘을 모아 추모식과 함께 세미나, 추모사화집 발간 등 추모 10주기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행사 준비에 문제는 없다. 한국소설가협회 김지연 이사장과 한국작가회의 이경자 이사장, 그리고 생전 각별하게 지냈던 소설가 오정희 선생의 추모 산문도 일찌감치 받아놓았다. 정호승 시인의 추모시 ‘지금은 천국의 ‘토지’를 집필하고 계시온지요’ 비롯해 70여 명의 시인과 작가의 작품도 준비되어 있다. 하나같이 선생을 애틋하게 추억하며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한국문학의 어머니로 추앙받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 달 5일 선생의 기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착잡해지기만 한다. 26년에 걸쳐 대작 ‘토지’를 집필한 집념, 한평생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에 의지해 “글기둥 하나 붙잡고” 창작의 고통을 온몸으로 감내하셨음은 이미 잘 알려진 터. 후배 작가들을 위해 창작실을 만들고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선생의 유지를 그런대로 잘 받들어왔다. 그럼에도 근래 들어 자꾸만 마음이 신산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생전 박경리 선생은 환경단체 공동대표를 맡으실 정도로 환경운동에 적극적이었다. 직접 옷 해 입고 텃밭에 작물을 심어 먹었던 선생은 “넘친다는 것은 결국 고갈을 초래할 것이며 또 우리에게 물질적 현상보다 먼저 오는 것이 정신적 현상”이라고 전제하고 “정신적 황폐가 지구를 고갈 지경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청빈(淸貧)이 아니면 인류는 구제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선생의 ‘본전론’은 유명하다. 땅이란 우리가 잠시 빌려서 쓰는 것인데, 그 땅에 화학비료를 뿌리고 농약을 무분별하게 살포하다 보면 땅심을 죽여 본전마저 까먹게 된다. 비료나 농약 대신 퇴비를 주고 정성을 쏟아 땅심을 북돋워야 한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빌린 본전을 까먹지 말고 그 이자만 가지고 살다가 본전은 고스란히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선생의 ‘본전론’이며 ‘생명사상’이다.
박경리 선생이 돌아가신 후 선생이 보고 싶어 이듬해 문득 평사리를 찾아오셨던 박완서 선생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지리산에 대한 사랑, 아니 자연에 대한, 생명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던 분이셨지요. 문학하는 사람이 그걸 잊으면 글을 쓸 수 없어요. 마찬가지로 생명에 대한 연민이 없는 정치나 교육 등은 죽은 정치요 교육일 수밖에 없지요.”
제1회 토지문학제 때 오셔서 소설 속에 나오는 대로 최참판댁을 재현한 걸 보시고, “아이고, 내 탓이다, 내 탓이야” 하셨던 탄식은 두고두고 명치를 찌른다.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선양하기 위해 재현한 기와집을 보고 기뻐하기보다 소설 때문에 사람들이 아까운 지리산을 헐었다는 자괴감에 가슴을 치셨던 것이다.
선생의 시 ‘시인2’의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방방곡곡 메아리치더니/ 도시는 병들고 황폐해졌으며/ 농촌은 농약 범벅 비닐이 숨통을 막고 있네/ 생명들 다 떠나면 어찌하나” 같은 구절에서 그런 우려가 잘 드러나 있다.
그랬던 선생의 10주기에 들려오는 뉴스들은 마음을 착잡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생태계가 교란되는가 하면, 대규모 멸종이 임박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다. 지난 20세기에 멸종된 동물이 200여 종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는 놀랍다.
특히 이들의 멸종 원인이 근원적으로 인간의 욕망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 이르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플라스틱 소비량이 세계 2위에 달한다는 소식, 바다에 떠 있는 미세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해 섭취한 바다 생물이 먹이사슬을 타고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있다는 소식, 봄날 골칫거리로 떠오른 미세먼지 속에도 미세플라스틱이 섞여 있다는 걱정도 보도되었다. 몸속에 쌓인 미세플라스틱 제거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 수술대에 누운 내 모습을 상상하는 건 끔찍하다.
이자만 가지고 살다가 본전을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삶을 계산해본다. 쉬이 답이 나오지 않는다. 혼자서 풀 수 있는 방정식이 아닌 탓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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