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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휴전선 녹였던 ‘2.5g의 기적’…그리고 부산 /이승렬

1991년 단일팀 지바 쾌거…대북·대남방송 일시 중단, 전선 녹인 탁구 열풍 후끈

2020년 부산세계선수권, 핑퐁외교 화룡점정 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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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봄. 겨우내 ‘찬바람이 쌩쌩 불던’ 중서부 전선에도 어김없이 진달래 피고 새는 울었다. 북한 땅에서 발원한 강물은 비무장지대(DMZ)를 관통하고 콘크리트 교량 아래 철조망 틈새까지 비집고 들어가더니 남으로 남으로 흘러갔다. 이른 아침, 임진강변의 한 ‘통문(비무장지대 출입문) 초소’에 군사보안용 전화벨이 울렸다. “금일 앵무새 이륙 불발.” 아뿔싸. ‘앵무새’가 뜨지 않는다는 소식은 20대 초반 장병들에게는 슬픈 소식이었다. 매월 한두 번 DMZ 내 전진초소(GP)에 들어가 대북방송을 하던 여군 하사들을 볼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괜히 들떠서 ‘전투화 광’을 평소보다 더 반짝반짝하게 냈던 총각 병사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필자의 ‘병영일기’ 1991년 4월 29일 자 내용 중 일부다.

통문 오전 근무 조장으로서 사유를 수소문했더니 누군가 “탁구 때문에”라고 알려줬다. “아, 지바!” 그제서야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 중인 사상 첫 남북단일팀이 떠올랐다. ‘코리아팀’은 이날 오후 ‘녹색의 마녀’ 덩야핑이 버틴 최강 중국과 금메달을 놓고 여자단체 결승전을 벌일 예정이었다. 남북이 탁구로 하나된 마당에 괜히 대북방송을 해서 인민군을 자극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결전의 시간. 철책 부근 벙커의 TV 앞에 모인 소대원들의 응원 열기는 뜨거웠다. “코리아, 코리아!”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전체 게임스코어 2-2 상황에서 최종 단식에 나선 북한의 유순복이 중국의 가오준을 2-0으로 완파했다. 하나된 남북의 힘이 마침내 난공불락이던 ‘만리장성’까지 무너뜨리자 벙커는 폭발할 지경이었다. 그날은 인민군의 대남방송도 들리지 않았다. 휴전선의 긴장을 녹여낸 ‘2.5g의 기적’이었다. 군 생활 10년째였던 선임하사는 “이 기세로 통일까지 가자”며 숨겨뒀던 양주병을 꺼내 소대원들에게 쐈다.
선임하사 말대로 통일이 눈앞에 온 듯했다. ‘지바의 기적’ 직후인 5월 초 남한의 쌀과 북한의 무연탄이 사상 첫 직교역 형태로 맞교환 됐다. 6월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단일팀까지 성사됐다. 불과 반년 전인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까지 목격한 터였다. 12월에는 화해와 협력을 위한 남북기본합의서도 채택됐다. 그러나 그 이후 통일의 싹은 기대만큼 자라지 못한 채 세월만 흘렀다.

그로부터 27년이 흐른 지난 1일 밤 ‘2018 세계탁구선수권’이 열리고 있는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2020년 세계탁구선수권 개최지로 부산이 확정됐다는 소식이다. ‘판문점선언’에 따라 55년 만에 휴전선과 DMZ 일대 대북확성기 철거가 시작된 날 접한 소식이었기에 감회가 남달랐다. 게다가 다른 곳이 아닌 부산이어서 의미가 더 특별했다. 부산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탁구 성지’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한국 구기종목 최초로 금메달 2개를 따낸 주인공이 모두 부산 출신 탁구선수들이다. 유남규와 현정화. 이들은 ‘지바의 영웅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이번 유치전에서 양재생 부산탁구협회장 등과 함께 선봉장 역할을 했다니 고맙고 자랑스럽다. 벌써부터 ‘어게인(Again) 1991’을 기대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경사의 와중에도 놓쳐선 안 될 아쉬운 소식도 있다. 북한 탁구대표팀이 자비 대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이 저개발국 선수와 코치를 돕기 위해 설립한 ‘올림픽 솔리더리티’ 기금 지원을 받아 이번 스웨덴 대회에 출전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 남자팀은 조별 예선리그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5전 전패로 탈락했다. 세계 최강 중국 대표팀과의 대결에서는 3명의 선수가 모두 0-3으로 패해 아쉬움을 더했다. 매 경기 결정적 고비를 넘기지 못한 것이 패인이었다. 그 원인은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에 따른 경제난으로 국제대회 출전 경험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IOC 지원을 받다 보니 단 3명의 선수밖에 보내지 못한 한계도 드러냈다. ‘1991년 지바’의 기적을 함께 이룬 코리아팀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다. 같은 민족으로서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부산시는 곧바로 ‘2020 남북 단일팀 프로젝트’에 돌입할 예정이다. 어제는 이번 스웨덴 대회에 출전 중인 남북한 여자 대표팀이 27년 만에 단일팀 즉석 구성에 합의했다. 분위기가 아주 좋다. 내친 김에 8월 아시안게임 대비 남북 탁구대표팀 부산 합동 전지훈련부터 시 차원에서 추진하는 욕심도 낼 만하다. 지자체별 남북교류사업 과제로 설정하면 된다. 따지고 보면 탁구야말로 지구촌을 옥죄던 ‘냉전의 벽’을 허문 종목이다. 1971년 4월 미국 탁구팀이 공산화 이후 22년 만에 중국 땅을 밟고 친선경기를 펼친 것이 ‘핑퐁 외교’의 효시였고 진정한 ‘2.5g의 기적’이었다. 그렇게 트인 냉전 와해의 세계사적 물줄기가 오늘날 남북화해 국면까지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핑퐁 외교’의 화룡점정을 부산에서 이룰 호기를 맞은 셈이다.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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