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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건 칼럼] 비로소 가동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무신불립’ 정신 외쳤지만 신뢰 없이 북에 강요만 한 박근혜의 대북정책 실패

남북 신뢰 회복 첫발 뗀 판문점선언 완성 전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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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는 30분간의 도보다리 밀담이라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지 싶다. 4월의 눈부신 신록을 배경으로 두 정상이 탁자에 앉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전 세계에 이례적으로 생중계된 영향도 컸다. 특히 평화롭기까지 한 두 정상의 모습에서 과연 두 나라가 65년이나 정전 체제를 이어온 게 맞는 건지 의심이 들 만도 했다. 남북 모두 최대의 극적 효과를 위해 연출된 것이라 해도 그날의 만남에 후한 점수가 내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상징적 장면만으로도 의미가 컸지만 사실 우리 모두의 관심은 그 너머에 있었다. 30분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과연 어떤 내밀한 이야기를 나눴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긴 했어도 짐작건대 두 정상이 서로에게 진정성을 호소하는 내용이 아니었을까 싶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북한 체제 보장 등에 관한 남한과 미국의 진심을 믿어달라고 했음 직하다. 김 위원장 또한 도대체 어떻게 하면 자신의 비핵화 의지를 믿게 할 수 있겠느냐고 고충을 토로했을 법하다. 요컨대 이번 만큼은 나를 믿어달라는, 서로 신뢰를 얻으려는 대화가 주를 이뤘을 거라는 추측이다.

돌이켜보면 남북 분단의 벽은 거대한 불신의 벽과 다름 없었다. 1972년 남북 공동성명을 필두로 2000년 김대중 정부의 6·15선언, 2007년 노무현 정부의 10·4선언에 이르기까지 합의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신뢰 구축이었다. 이 모든 선언에 어떤 형식이든 신뢰란 단어가 반드시 포함된 건 역설적으로 불신의 벽이 그만큼 높았다는 의미다. 이번 판문점선언에도 예외 없이 ‘군사적 신뢰의 실질적 구축’이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이 또한 과거처럼 한낱 미사여구로 끝날지 또 한번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었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남북 문제의 본질을 꿰뚫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북 간 교류 협력과 신뢰 구축을 통해 통일기반을 마련한다는 게 골자다. 인도적 문제의 지속적 해결, 대화 창구 구축, 기존 합의정신 실천, 호혜적 교류협력의 확대 심화 등이 구체적 내용이다. 큰 틀에서 보자면 6·15선언, 10·4선언과 궤를 같이한다. 무엇보다 ‘무신불립(無信不立·신뢰가 없으면 아무것도 서지 않는다)’이란 논어 문구까지 인용할 정도로 신뢰를 강조했으니 진보나 보수를 떠나 획기적 변화를 기대할 만했다.
하지만 ‘신뢰로 풀어가는 남북관계, 신뢰로 하나되는 한반도’라던 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말과는 거꾸로 갔다. 북한의 잇단 핵실험 도발이 발단이었다. 그 결과는 개성공단 폐쇄라는 극단적 조치로 이어지며 남북관계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물론 일단의 책임이 북한에 없지는 않다. 북한이 핵 도발 등을 감행하지 않았다면 이런 초강경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리라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문제는 박 정부에는 책임이 없었느냐는 점이다. 2013년 우리 측 수석대표의 ‘격’을 둘러싼 논란 끝에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된 것은 진정 신뢰 구축이라는 의지가 있었다면 대범한 양보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말 그대로 남북이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하루아침에 신뢰가 형성된다면 앞선 남북 선언문마다 이를 명시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부터 서로를 믿는다면 굳이 기나긴 협상은 필요 없다.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조금씩 상대의 진심을 이해하며 믿음이 싹트는 것이다. 박 정부는 말만 신뢰를 앞세웠고 이를 북한에만 강요했다. 과정으로서의 신뢰가 아니라 결과로서의 신뢰 담보에만 집착했다. 이러니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한반도 불신 프로세스’로 전락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홍준표 대표의 “위장 평화쇼”라는 폄하까진 아니더라도 보수 일각에서는 여전히 판문점선언에 부정적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구체적 이행계획도 없이 완전한 비핵화라는 문구 하나에 환호하는 모습이 영 마뜩잖을 만도 하다. 앞선 수차례의 남북 합의문이 휴지조각이 돼버렸던 전철을 밟을 것이란 불신이다. 남북의 오랜 불신 못지 않은 우리 내부의 불신이기도 하다. 이 또한 단번에 눈 녹듯 사라질 수는 없다. 남북 불신의 높은 장벽이 걷히는 날 함께 허물어지리라 믿는다.

박 정부에서 실패했지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판문점선언으로 비로소 가동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결코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문 대통령의 선언은 이번만큼은 남북이 서로를 믿겠다는 강한 다짐일 터이다. 비핵화의 긴 여정에 예기치 않은 돌발변수가 나올지도 모르지만 믿지 않고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박 정부가 말로만 내걸었던 ‘무신불립’의 정신으로 판문점선언의 완성에 힘을 모을 때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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