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는 이탈리아 공산당 창당 주역이자 서구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기틀을 마련한 사회사상가이다. 유명한 ‘옥중수고’는 파시스트 정권에 의해 수감된 1926년 이후 10여 년간 박해 속에 죽어가면서도 중단하지 않았던 두뇌 활동의 성취물이다. 1928년 5월 마지막 재판에서 검사는 “우리는 이 자의 두뇌 작동을 20년 동안 중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로 그람시는 영민한 인물이었다. 무솔리니는 실제로 ‘20년4개월5일형’을 선고해 그를 감옥에 가둘 수는 있었지만, 두뇌 활동까지 가둘 수는 없었다.

국내에서는 고(故)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널리 알려진 옥중서신이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20일의 수감생활을 한 저자가 1988년 출감 후 그간의 엽서 등을 간추렸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군부에 체포된 그는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는다. 김 전 대통령은 생사의 기로에서 2년6개월간 부인 이희호 여사와 자녀들에게 29통의 편지를 보냈다. 그의 미국 망명 기간이던 1984년 책으로 묶였다. 그람시, 신영복, 김대중의 옥중서신은 정치적 탄압의 결과물이다. 형이 확정된 양심수로서 법적 대항력을 상실한 사람의 마지막 자기 방어수단이었기에 독자는 그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기 마련이다.

그러나 최근 ‘짝퉁 옥중서신’이라는 비판을 받은 사례도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수감 직후 그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서신이다. 수감 전 미리 작성해 놓은 글을 다른 사람이 대신 올려 빈축을 샀다. ‘무술옥사’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자신이 정치보복의 희생양이라고 했지만, 귀 기울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

‘드루킹’ 김모 씨가 조선일보에 보낸 옥중서신이 정치판을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후보가 불법 댓글 사건의 주범이라는 주장이 요지다. 김 후보 측은 “황당한 소설”이라고 일축한 상황. 진실 여부는 알 수 없고, 수사를 통해서만 드러날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드루킹이 적어도 독재권력에 의해 수감된 양심수는 아니라는 점이다. 재판이 진행 중인 미결수로서 변호인 접견권 등 법률적 방어 수단도 충분히 보장받는다. 그런데도 ‘옥중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혹시라도 ‘댓글 조작’을 통해 익힌 여론 조작 수법을 되풀이하려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