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백악관 참모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보스의 ‘돌출행동’이었다. 취임 후 잇단 외교 결례로 자신들을 난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해 2월 미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손을 꽉 쥐고 19초 동안 세차게 흔든 것이 첫 사고였다. 이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서는 서로 이를 악물고 힘을 줘 악수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선 사진을 촬영하면서 두스코 마르코비치 몬테니그로 총리를 밀쳐내고 앞줄로 자리를 옮겨 참석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두곤 ‘대단한 친구(great guy)’라고 했다가 가톨릭 신자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참모들의 염려를 의식했는지 아시아 순방에 앞서 “누구도 난처하게 만들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첫 방문지인 일본에서 아키히토 일왕과 헤어지면서 일왕의 오른팔을 툭툭 건드려 일본인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아세안 정상회의에선 참석자들과 한 줄로 서서 양손을 엇갈리게 잡고 사진을 찍는 관례를 어기고 자신의 왼쪽에 있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에겐 손을 내밀지 않았다. 마지막 일정인 동아시아 정상회의에는 회의가 늦게 열린다는 이유로 참석조차 하지 않고 떠나버렸다. 결례로 시작해 결례로 끝난 순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는 올해 들어서도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정도가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단독회담 모습이 그랬다. 통상 단독회담은 간단한 모두발언만 공개한 뒤 비공개로 들어간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응대하는 바람에 회담이 늦어진 데다, 진행시간도 당초 잡았던 30분에서 21분으로 줄었다. 심지어 한국 기자가 문 대통령에게 “북미 정상회담과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느냐”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전에 들은 말일 것 같다”며 문 대통령의 대답에 대한 영어 통역을 막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는 이에 대해 “외교 참사”라고 꼬집었다.

이 지경이면 외교 ‘결례’가 아니라 ‘무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디테일의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든다. 최근 비핵화 방법을 둘러싼 북미 갈등에서 보듯, 북한은 ‘자존심’ 문제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회담의 새로운 근심거리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