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 달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지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전망에 대해 낙망하기에는 이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의 여지를 남겨놓은 데다 북한도 협상 의사를 분명히 표명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지금 시점에서 회담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도 “언젠가는 당신(김 위원장)을 만나길 고대한다”고 했다. 북한 역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의 담화에서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회담 취소 사유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담화다. 최 부상은 담화에서 “북한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발언을 꼬집어 “상상도 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을 맛보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 사유일 뿐이다. 문제의 본질은 북한 비핵화 방법이다. ‘선 비핵화, 후 보상’을 골자로 한 ‘리비아 모델’을 고집하는 미국과 두 사안의 단계적, 동시적 이행을 바라는 북한의 입장 충돌이 회담 취소를 초래했다. 이 같은 사실은 김·최 부상의 담화에서도 드러난다.

한 가지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물리적으로 단계적 해법은 어느 정도 필수조건”이라며 북한의 주장을 일정 부분 수용할 의사를 내비친 대목이다. 북미는 물밑 조율을 통해 이견을 좁혀나가야 한다. 백악관 관계자도 “북미 정상회담 개최 희망은 여전히 있다”며 “양국 사이의 ‘백 채널’을 열어놨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간 타협점 모색을 적극 도와야 한다. 김 위원장과의 핫라인도 가동할 때가 됐다. 진짜 중재는 이제부터다.

그리고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로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가시화됐는데도 미국이 회담을 취소한 건 옳지 않다. 힘의 논리를 앞세운 일방주의라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런 행태가 재발한다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신은 크게 추락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과 한마디 상의 없이 북한에 회담 취소 의사를 통보한 것도 마뜩잖다. 트럼프 대통령의 소망대로 조속히 북한을 비핵화하려면 한미 간 정보 공유와 협력 강화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