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일본 오카야마현의 어느 사찰에서 안중근 의사의 유묵(遺墨) 하나가 68년 만에 발견돼 화제를 모았다. 안 의사가 1910년 3월 26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기 전 일본인 교도관에게 써 준 것이었다. 그 교도관이 귀국 후 사찰 주지가 되어 유묵을 보관하고 3대째 이어오던 것을 한국인 교수가 찾아냈다. 유묵 글귀는 ‘戒愼乎其所不睹(계신호기소부도)’. 군자는 그 보이지 않는 바에 경계하고 삼간다는 뜻으로, 중용(中庸) 서두에 나온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투옥됐다. 그리고 이듬해 2월 14일 사형선고 때부터 순국 전까지 감옥에서 수많은 묵서를 남겼다. 수신인은 그를 취조했던 검찰관이나 감옥 간수, 통역 등 모두 일본인이었다. 1986년 일본에서 안 의사 유묵 3점이 잇따라 발견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지금도 드러나지 않은 유묵이 더 있을지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72년 국유 또는 개인 소유 등의 안 의사 유묵 26점이 보물 569호로 지정됐고, 2000년에는 2점이 추가로 보물 명단에 올랐다. 이들 유묵에는 인장 대신 안 의사의 왼손가락 중 약지가 잘린 손바닥의 장인(掌印)을 찍은 게 특징이다.
보물로 지정된 유묵 중에는 그의 지론인 동양평화론에 관한 내용도 있다. ‘동양을 보존하려면 우선 침략정책을 버려야 한다. 때가 지나고 기회를 잃으면 후회한들 무엇하랴’ 등의 글귀가 그것이다. 그 외 ‘國家安危勞心焦思(국가안위노심초사)’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이라고 쓴 유묵도 인상적이다. 이들 글귀는 아주 단정하고 힘찬 필치의 서예적 가치뿐 아니라 독립투사의 충정과 기개가 깃들어 있다는 평가다.
그제 국내 미술경매시장에서 안 의사의 유묵 한 점이 1억6000만 원에 낙찰돼 눈길을 끌었다. 이 또한 안 의사가 1910년 3월 뤼순 감옥에서 쓴 것으로, ‘貧與賤 人之所惡者也(빈여천 인지소오자야)’라고 적혀 있다. 가난하고 천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라는 의미인데, 그의 부귀빈천에 대한 철학이 나타난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앞서 4년 전에는 ‘敬天(경천)’이라 쓴 그의 유묵이 경매에서 유찰됐다가 종교단체에 기증되기도 했다.
안 의사가 순국한 지 올해로 108년이 됐지만, 그의 유묵에 담긴 정신과 그의 삶은 후세에 거울이 되고 큰 울림을 주리라 믿는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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