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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건 칼럼] 양승태, 억울할수록 당당히 조사 임하라

재판 뒷거래 의혹 후폭풍, 결코 믿고 싶지 않은 일

확대 해석 억울하다면 자신과 법원 명예 위해서 스스로 입증하는 게 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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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만신창이가 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 보고서의 후폭풍이다. 그 무엇보다 엄정해야 할 대법원 판결에 ‘뒷거래’라는 음습한 의혹의 딱지라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결국 김명수 대법원장이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사과를 하고 의혹 해소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곧바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진실이 뭐든, 하루 사이 전·현직 대법원장이 핑퐁게임하듯 입장을 밝히며 치고받는 진기한 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 사법부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임에 틀림없다.

양 전 대법원장은 국민께 송구하다면서도 두 가지 점에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대법원과 하급심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하지 않았고,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판사에게 불이익을 준 적이 없다는 부분이다. 특히 ‘재판 독립의 원칙을 금과옥조로 사는 법관으로 40여 년을 지내온 사람’으로서 ‘거래는 꿈도 못 꿀 일’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2011년 ‘재판의 독립 없이는 법원이 결코 그 사명을 완수할 수 없고, 민주주의도 존속할 수 없음을 확신한다’는 그의 취임사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아무려면 당연한 이야기다. 평소 보수적 성향이란 말을 듣긴 했어도 주변에 이를 강요해 분란을 일으키지는 않는 정통 법관으로 평가받아온 그다. 더구나 대법원이 어떤 곳인가. 사법정의의 마지막 보루 아닌가. 그 수장으로 6년이란 세월을 지내며 자신의 약속과 명성에 흠집을 냈으리라고는 보기 어렵다. 의혹만으로도 자신은 물론 법관 전체에 이보다 더 심한 모욕은 없을 터이다. 정말이지 ‘뒷거래’라는 얼토당토않은 의혹에 엮이고 있는 사실 자체를 믿고 싶지 않은 것은 비단 그 뿐만이 아닐 것이다.

특별조사단이 밝힌 재판 거래 의혹의 문건 내용을 보면, 양 전 대법원장이 억울함을 호소할 만한 소지도 없지 않다. 평생의 숙원인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추진 전략으로 법원행정처 판사가 아이디어 차원에서 작성한 내용이 확대해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KTX 승무원 해고 사건이나 전교조 시국사건, 국가배상 제한 등을 사례로 들었지만 청와대가 좋아할 만한 이전의 판결을 참고 삼아 첨부했을 뿐 실제 뒷거래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양 전 대법원장 뜻과는 무관하게 나서기 좋아하는 문건 작성자가 ‘오버’했다는 이야기다.
요컨대 재판 뒷거래 정황을 뒷받침하는 듯한 문건의 내용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게 논란의 초점이다. 그러나 문건 내용이 실제 실행되지 않았다고 아무리 호소한들, 재판을 자신들의 특정 목적과 거래하려는 의도를 보였다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다. 나아가 실행되지 않았다는 것도 양 대법원장 측 주장일 뿐 여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여론은 물론 전국의 상당수 법관까지 검찰 고발 등을 통해 제대로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양 전 대법원장 측 주장을 믿고 싶어도 공은 이미 그들의 손을 떠난 셈이다.

여론은 그렇다 쳐도 많은 법관이 명확한 진상규명을 요구한 이유는 확실하다. 양 전 대법원장 말대로 이번 의혹이 제기된 것 자체만으로 ‘재판을 한 대법관을 비롯한 법관들에게 심한 모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특별조사단 조사를 받지 않은 이유를 묻자 “내가 가야 되나. 그 이상 뭐가 밝혀지겠나”라며 의혹 해소에 소극적 입장을 보였다. 검찰 수사를 받을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그때 가서 보자고 했다. 자신은 물론 많은 법관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 판인데 정작 이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는 없었다.

김 대법원장이 각계 의견수렴 뒤 고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는 어떤 식이든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민간 등에서 10여 건이나 그를 조사하라며 고발을 해 놓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대법원의 고발 뒤 끌려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는 말아야 한다. 억울할수록 조사를 받겠다는 의지를 먼저 보이라는 이야기다. ‘뒷거래’라는 주장이 터무니없다면 오히려 조사를 적극 자청해 누명을 벗는 게 한때 대법원 수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당당한 태도다.

혐의 여부를 떠나, 대법원장 출신으로 사상 처음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게 더없는 불명예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명예만 중요한 게 아니다. 다른 많은 법관의 명예는 물론 법원 전체의 신뢰가 이미 만신창이가 된 마당이다. 사법정의가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일신의 명예는 잠시 접어두는 게 옳다. 그는 퇴임사에서 비록 6년의 세월이 가시밭길이었지만 국민의 신뢰 증진을 가장 중요시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비록 임기는 끝났지만 이 다짐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는 걸 밝히는 건 그의 몫일 수밖에 없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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