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12월 6일 자 매일신보에는 ‘여자 운전수 출현?’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우리 조선에서는 부인들은 집안살이나 잘하면 그만이라는 습관으로 인해 직업을 전혀 돌아보지도 않았으나… 머지않아 여자 운전수 한 명이 나올 모양인데 진실로 흥미로운 현상’이라며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기사 속 주인공인 20대 초반 최인선은 이듬해 경성자동차강습소의 모든 과정을 무사히 수료, 운전면허를 딴 최초의 조선 여성이 됐다.

최인선의 운전면허 취득은 남성에 비해서도 그리 늦지 않았다. 사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운전면허 1호 소지자는 1913년 면허를 딴 이용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최인선의 당찬 도전 후 10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나라 여성 운전자의 수는 크게 늘었다. 2016년 기준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 3119만359명 가운데 41.3%인 1289만8375명이 여성이다. 1976년 1만4587명(1.8%)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지난 4일에서야 비로소 현실이 됐다. 사우디는 이날 여성에게 처음으로 운전면허증을 발급했다. 또 오는 24일부터는 여성의 운전금지 규정도 해제된다. 지난해 9월 살만 국왕이 칙령을 통해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할 것을 명령한 지 8개월여 만이다. 여성에 대해 유난히 엄격한 기준을 들이댔던 사우디의 파격 행보는 정권 실세라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 노력 덕분이다. ‘온건한 이슬람 국가’를 기치로 내세운 그는 올 1월에는 여성의 축구경기장 입장을 허용했다. 지난 4월에는 35년 만에 상업영화관을 개관하면서 당초 전망과 달리 남녀 좌석을 분리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반면 사우디의 여성자유 확대 정책은 속과 겉이 다르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사우디는 최근 여성의 운전 권리를 주장했던 활동가 17명을 사회안전에 방해가 된다며 체포했다. 외신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여권 신장은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가 낳은 결과물이지 사회의 요구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사우디가 지구상에서 여성의 운전을 금지하는 마지막 나라라는 굴레를 벗은 것은 잘한 일. 하지만 종교적 특수성과 정교일치 사회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세계에서 여성인권이 아주 열악한 국가 중 하나라는 오명을 완전히 씻어내기까지는 갈 길이 먼 듯하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