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던 미국 경제를 활기차게 바꾼 것은 혁신 기업가들이었다. 애플 페이스북 등 혁신 기업들이 성장을 이끌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왔다. 그래서 로런스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은 “21세기는 애덤 스미스도, 존 메이나드 케인스도 아닌 조지프 슘페터의 세기다”라고 선언했다. 슘페터는 성장의 동력을 혁신으로 ‘창조적 파괴’를 이끈 ‘기업가 정신’으로 규정했다. 반면 공공지출을 늘려 성장을 유도하는 케인스식 접근은 재정적자의 문제를 낳고 임시방편의 경기 부양에 불과했다. 불가능에 도전하며 새로운 것을 찾는 ‘기업가 정신’, 이것이야말로 일자리 창출과 성장의 키워드인 것이다.

경영학 분야의 최고 석학으로 불리던 피터 드러커는 우리나라에 대해 놀라운 평가를 내놓은 적이 있었다. 그의 저서 ‘넥스트 소사이어티’에는 1996년 한 잡지사 편집장과의 대담이 실려 있다. 편집장이 ‘기업가 정신’이 가장 뛰어난 나라는 당연히 미국일 것이라고 하자, 드러커는 단호히 아니라고 했다. 그는 1등은 “의심할 나위 없이 한국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약 40년 전만 해도 한국에는 기업이 전혀 없었습니다. 한국을 몇십 년 지배한 일본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고등교육도 허용하지 않아 한국에는 실질적으로 교육받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남한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은 24개 분야의 산업에서 세계 일류 수준이고, 조선과 몇몇 분야에서는 세계 선두 주자입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에서 우수 중소기업까지 한국기업들이 세계 최고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줄은 불과 몇십 년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다.

드러커는 한국과 미국의 ‘기업가 정신’에는 다른 특징이 있다고 했다. 미국에는 스타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조직적인 힘이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등은 자신이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기기를 제작한 발명가이자 기술자였다. 이들은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기술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 간 것이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한국의 창업자들은 기술자가 아니었다. 이들은 도전 목표를 세우고, 외국 기술을 들여와, 인재들을 배치하고 독려하여 기존의 기술을 개량하고 개선하여 짧은 기간 내 새로운 가치와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우리의 혁신 창업가는 ‘혁신을 조직적으로 접근’한 경영인이었다. 드러커 교수가 이들을 ‘기업가 정신’의 상징으로 칭송한 것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불가능에 도전했다는 것과 경영자, 연구자, 근로자 등이 목표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만든 점이다. 불굴의 도전과 목표를 향한 강한 집념, 이것이 한국의 ‘기업가 정신’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기업가 정신’은 바닥에 떨어졌다.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도전 대신에 공무원과 공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줄 서 있다. 왜 창의적인 도전정신이 사라진 것일까? 드러커 교수는 기업가 정신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반기업 정서를 들었다. 정치인, 공무원, 학자 등 기업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기업 활동에 대해 간섭하면서 규제가 늘어났다. 간섭과 규제가 많아지면 기업가 정신이 싹트기 어렵다. 한편 기업인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경제가 발전하면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도 커지는데 이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그런데 드러커는 오늘날 경영자가 해야 할 사회적 책무 중에는 기업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업이 하는 일과 역할을 이해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금 ‘기업가 정신’이 불타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창업에 도전하는 기업가만도 1억20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미 중국은 인공지능(AI), IT와 금융이 결합한 핀테크, 드론 등 신산업에 도전하여 성과를 내고 있다. 우리의 반도체를 따라잡는 것도 시간문제가 되었다. 정부와 칭화대학이 참여한 칭화유니(紫光)그룹은 30조 원을 투자하여 올해부터 메모리반도체를 본격 양산할 예정이며 향후 10년간 110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우리는 ‘기업가 정신’의 ‘기업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조차 없다. 드러커 교수가 한국을 ‘기업가 정신’ 일등국으로 평가할 때, 정작 우리는 고도 성장기에 대한 칭찬 정도로 여겼다. 세상을 바꾼 것이 ‘기업가 정신’이라면, 이제라도 ‘기업가 정신’을 살리기 위한 깊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전 한국IR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