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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개와 늑대의 시간이 왔다 /권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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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6-06 19:08:29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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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이처럼 재치 있게 표현한 글을 봤었나 싶어, 최근 읽은 문장을 우선 소개한다.

‘선거는… 심하게 말하면 ‘노예가 지배자가 될 귀족을 고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다시 선거를 진지하게 바라봐야 한다. ‘닥치고 투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욱 중요한 일은 시민들이 차가운 시선과 뜨거운 가슴으로 우리의 대변자라고 떠드는 사람들을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저마다 우리의 충견이 되겠다고 하지만 훗날 탐욕스러운 늑대였던 경우가 많았다. 설령 개를 뽑았다고 해도 광견이 되어 주인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았다. 늑대들에게 속지 않도록 주의하고 개가 날뛰지 못하도록 목줄을 꽉 붙잡아야 한다’. (‘개와 늑대들의 정치학’·함규진)

또 ‘황혼’이 왔다. 빛이 어둠으로 바뀌며 세상이 어스름해지는 시간이다. 저 언덕 너머에서 다가오는 실루엣이 우리가 기르던 개인지 우리를 해치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특히 ‘서울의 황혼’보다 ‘지방의 황혼’은 훨씬 위험하다. ‘서울’이라 통칭하는 수도권에선 개와 늑대의 실루엣에 비춰볼 작은 손전등이라도 있다.

며칠 전 한국기자협회의 전화를 받았다.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지역언론사 기사가 전혀 노출되지 않는 것에 관해 무엇이 문제인지를 물어 왔다. 쉬운 예를 들어 답했다. “6·13지방선거가 한창이죠? 그럼 부산시민은 하루 동안 부산시장선거 기사를 몇 건이나 볼까요? 서울시장 기사를 10건 접한다고 치면, 부산시장 기사는 고작 한두 건 아닐까요? 포털의 힘이 막강함을 넘어 권력이 된 지금, 포털이 보여주는 기사가 ‘서울’뿐이니. 부산시민은 투표권도 없는 서울시장 기사에 더 많이 노출됩니다. 자연스레 관심은 그쪽 선거에 더 쏠리게 마련이겠죠. ‘수도권선거’ ‘서울선거’가 아닌 지역분권의 기초가 될 ‘지방선거’인데 말입니다.”

같은 날 퇴근 후 TV를 켰다.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가 한창이었다. 황금시간대라 불리는 밤 10시부터 전국에 생중계됐다. 어색했다. “난 경기도지사 투표권이 없는데? 부산시장 후보 토론회를 보고 싶은데?” 부산시장 후보 토론회가 지역방송에서라도 황금시간대 편성되거나, 전국에 중계되는 건 꿈만 같은 일이다. “수도권 광역단체장은 차기 대권 후보로 분류되니 당연하다”라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 득표율 1, 2위 후보는 직전 부산 사상구 국회의원, 경남도지사였다.
다음 날 포털사이트는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 기사로 도배됐다. 오전 한때 실시간 검색어 1~10위 가운데 9개가 토론회 관련 단어로 채워졌다. 부산시민 상당수가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를 보고, 모바일로 기사까지 읽었으리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날, 국제신문 정치면엔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부산시장 후보? 몰라요’.

그리고 그다음 날, 역시 황금시간대에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가 전국 전파를 탔다. 부산시민이 부산시장 후보 이름은 몰라도 서울시장·경기도지사 후보는 알 수도 있겠다, 국회의원 부산 해운대을 보궐선거는 몰라도 서울 송파을 재선거는 알 수도 있겠다는 서글픈 생각까지 스쳤다. 사정이 이러니 부산시민을 비롯한 지역민이 이번 선거에서 충견과 광견을 골라내기는커녕 개와 늑대를 가려내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깝다. 언덕 너머 털북숭이의 실루엣에 비춰볼 껌뻑이는 손전등마저 없는 이가 너무 많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보여주는 대로만 보고, 들려주는 대로만 들어선 안 된다. 스스로 열심히 필요한 정보를 찾고, 집요하게 질문해서 대답을 들어야 한다. 바빠서 그럴 수 없다면, 포털사이트에서 ‘서울 뉴스’ 볼 시간에 선거관리위원회나 지역언론사 홈페이지를 한 번씩만 훑어보자. 우리는 귀족의 노예가 아니라, 늑대나 광견에게 물어뜯길 ‘핫바지’가 아니라, 충성스러운 개의 주인이 되기 위해 투표한다. 4년 전에도 8년 전에도 ‘우리 동네 일꾼’을 자처하며 거리에서 떠들던 개와 늑대들의 말대로라면 당장이라도 새 세상이 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한 번도 그런 세상에서 살아본 적 없다.

저물녘, 또 개와 늑대들이 왔다. 정신 바짝 차리자. 목줄을 꽉 붙잡자. 충견을 기르자. 광견과 늑대가 우리 주인 행세하는 꼴을 또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디지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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