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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알 박기 돌을 빼내야 길이 보인다 /황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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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6-11 19:27:28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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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A가 전화를 걸어왔다. A는 전임 정부 때까지 잘나가던 고위 공직자였다. 몇 마디 의례적인 인사가 오간 후 A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이번 지방선거 어떻게 돼?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이 싹쓸이한다는데.” 참 당혹스러운 질문이다. 그렇다고 명색이 정치평론을 업으로 하는 내가 그냥 두루뭉술하게 대답하기도 그렇다.

여론조사는 과학이다. 우리나라의 여론조사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있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 흐름을 파악하는 가장 유효한 과학적 기법이다. 과학적 기법에 터 잡아 미래를 예상하는 것이 예측이다. 그래서 “현재 여론조사상 1·2위 순위가 뒤바뀌는 것은 오차범위 내라면 모를까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드러난 격차만큼 큰 차이는 아닐 것이다”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다만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2010년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 때의 예를 들었다. 여론조사기관들은 그때를 생각하기도 싫을 것이다. 여론조사도 한계는 있다. 그래서 신뢰수준과 표본오차를 두는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틀려도 너무 참담하게 틀렸다. 단서를 달면서도 그 당시와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는 다르고 더욱이 현 정부 집권 1년 만에 치러지는 선거이니만큼, A가 내심 바라고 있는 ‘숨은 표’는 별 변수가 안 될 것이라고 했다.

A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그러면 지방선거 이후 정계개편은 있는 거요?”라고 묻는다. 정계개편이 이루어지려면 무엇보다 구심점 역할을 할 중심인물이 분명해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에너지다. 즉 확실한 명분과 그 명분에 지지와 성원을 보내는 국민들의 열망이 바로 에너지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 야권에 구심점이 있나, 눈길을 확 휘어잡는 명분이 있나, 지지층의 염원이 있나? 인물과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 쉽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지난 8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기자회견을 갖고 선거 후 반(反)문재인 연합의 불가피성을 피력했다. 홍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면 보수 대통합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홍 대표의 이런 주장에 큰 힘이 실리지 않는 분위기다. 지금 당장 김문수-안철수 후보 단일화로 상징되는 반(反)문재인 연합도 만들지 못하면서, 지방선거 이후를 예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냉담한 반응이다.

홍 대표는 지방선거 이후 조기 전당대회를 열고 본인이 또다시 당권에 도전할 것임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런 홍 대표가 선거 후 보수 대통합을 말하고 있으니, 결국 선거결과에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고 당권 유지에만 매달리는 것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기 딱 십상이다. 왜냐하면 선거에서 승리하게 되면 굳이 조기 전당대회를 열 필요가 없기에, 조기 전대를 고려한다는 것 자체가 선거패배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도보수의 여론주도층들 사이에 나돌고 있는 험악한 말이 있다. 바로 망하려면 차라리 폭삭 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설프게 망한 것도 아니고 망하지 않은 것도 아니면 오히려 재기의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다. 완전히 무너지고 나면 마치 대대적인 재개발을 하듯이 기초부터 완전히 환골탈태하여 새로운 비전을 세울 수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이다. 그것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시대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외친다.

그런데 문제는 ‘알 박기’가 문제다. 실제 한 도시를 재개발할 때도 가장 골칫거리가 바로 알 박기해놓은 한 줌의 토지이다. 그 알 박기 때문에 재개발은 항상 난항에 부닥치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나라 보수 세력도 그런 모양새다. 혁명적인 변화가 절실한데 그렇다고 자신들이 쥐고 있는 기득권을 포기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다. 내 것은 틀어쥐고 남의 것은 내려놓으라고 하면 일이 될 리가 있겠는가.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고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하지만 좀 더 길게 보고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누가 뭐래도 대통령선거에서 이기면 모두 이기는 것이다. 4년 후 대선에서 한번 승부를 겨루어보려면 지금은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2년 후 총선에서 작은 교두보라도 구축할 수 있다. 그를 바탕으로 또다시 전진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오늘날 문재인 정부가 존재할 수 있는 것도 2007년 대선 패배 후 친노의 핵심인 안희정·이해찬의 폐족(廢族)선언과 총선 불출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웠기 때문에 이후 절치부심과 와신상담을 거쳐 드디어 9년 만에 정권을 탈환할 수 있었다. 알 박기 돌은 스스로 빼내야만 길이 보이는 법이다.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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