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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평화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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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은 황폐했다. 청나라가 멸망했지만 고향은 여전히 봉건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흉작과 무거운 세금을 견디지 못해 뿌리 뽑힌 인생처럼 하나 둘 타향으로 떠나는 주민들의 얼굴엔 핏기라곤 없었다.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 루쉰(1881~1936)이 본 고향의 쓸쓸한 표정이다. 그래도 그는 희망을 생각한다. ‘희망은 마치 땅 위에 나 있는 길과 같은 것이다. 원래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이 다니면서 길이 생겨난 것처럼 희망도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다’. 그는 단편소설 ‘고향’의 말미에 썼듯이 암담한 현실에서도 휘청거리는 자신을 추스르고 동포를 위로한다.

   
절망과 허무의 늪에서 벗어나려는 ‘희망 꿈꾸기’ 몸부림을 통해 희망은 길처럼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희망이 곧 길인 셈이다. “나의 사상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확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하겠다’는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루쉰의 이런 인식은 1925년 아내 쉬광핑에게 보낸 편지에도 나타난다. 전근대적 질곡에 대한 저항은 그의 실존이자 희망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루쉰과 동병상련의 처지였던 시인 윤동주(1917~1945)에게서도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잃어 버렸습니다/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길게 나아갑니다//(중략)//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내가 사는 것은, 다만/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 시인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탈식민의 희망 찾기라고 봤고, 그는 아예 그것을 ‘길’이란 시 제목으로 표출했다.

그로부터 70년이 흘렀지만, 한반도 문제의 해법은 달라지지 않았다. 목표만 ‘탈식민’에서 ‘탈냉전’의 평화체제 구축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해 인용했던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12일 싱가포르에서 “판문점선언의 합의대로 올해 안에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목표”라는 말로 이를 구체화했다.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한반도와 세계 평화·번영에 이바지하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북미 정상의 6·12 공동성명 정신과 같은 맥락이다.
다른 길은 없다. ‘평화’라는 이름의 길로 달려가는 일만 남았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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