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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영국 자유당의 유령 /차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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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7-18 19:19:44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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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초 한 권의 책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서울대 강원택 교수의 ‘정당은 어떻게 몰락하나’. ‘영국 자유당의 역사’라는 부제처럼 자유당의 부침, 그중에서도 몰락 과정을 자세히 분석했다. 17세기 영국 시민혁명으로 태동한 초기 의회를 양분했던 ‘토리와 휘그’ 중 휘그를 계승한 게 자유당. 19세기 중반부터 자유당은 토리를 이은 보수당과 함께 영국 정치를 주도해왔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월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 총리가 바로 자유당 소속. 선거권 확대, 아일랜드 독립, 상원 개혁 등 역사적 개혁 정책들은 모두 자유당 정부 때 이뤄졌다. 20세기 들어 자유당은 거짓말처럼 나락으로 떨어진다. 1924년 총선에서 불과 40석을 얻어 419석을 차지한 보수당, 151석의 노동당에 참패했다. 이후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동안 학계는 자본주의 심화에 따른 노동계급의 부상 등 사회구조적 변화가 불가피하게 자유당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강 교수의 진단은 달랐다. “사회구조적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변화한 유권자의 뜻과 시대적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결과 자멸했다.” 외생적 변수보다는 이에 대응하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기득권에 안주한 태도가 더 큰 이유라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의식은 한국 현실정치에 대한 강한 경고로 이어졌다. “민주화 이후 지역주의와 단순 다수제 선거제도(소선거구제)라는 강력한 제도적 방어막 뒤에서 폐쇄적인 독과점 구조를 형성하며 기득권을 유지해 오고 있는 한국의 거대 정당들이 유권자의 높은 불신과 혐오, 무관심 속에서도 과연 정치적 생명력을 끈질기게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당시 강 교수의 경고를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다. “영국 자유당의 전철을 밟을 당이 어느 당이냐?” 다수의 견해는 민주당으로 모아졌다. 때마침 ‘새 정치’를 기치로 내건 안철수 신당이 태동하던 시점. 잇단 선거패배에도 정치적 ‘텃밭’ 호남이라는 기득권에 기댄 채 내분만 거듭하는 민주당을 신당이 대체할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모두 아는 대로 민주당은 몰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권을 교체하고, 지역주의 벽을 넘어 이젠 전국정당화의 꿈도 이뤘다. “20년 집권도 불가능은 아니다.” 민주당 측에서 흘러나오는 자신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일단 민주당 나름의 혁신 노력이 먹혀든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냉정히 보면, 민주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한국당의 ‘자책골’에 따른 반사적 이익에 힘입은 바 크다. 사실 한국당은 ‘지역주의와 소선거구제라는 강력한 제도적 방어막’을 바탕으로 ‘보수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 것까진 성공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기득권이 영원할 것이라는 오만함 속에서 유권자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에 분노한 민심이 재작년 촛불혁명으로 폭발했다. 그럼에도 한국당은 전혀 각성하지도, 바뀌지도 않았다. 오히려 홍준표 체제의 한국당은 ‘변화한 유권자의 뜻과 시대적 가치’와는 정반대의 길로 갔다. 그 결과가 이번 지방선거 참패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혁신보다는 계파 이익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당연히 민심은 더 멀어지고 있다. 지난주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한국당은 마침내 정의당에 따라잡혔다. 한국갤럽의 지난 12~14일 여론조사(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10%로 정의당과 동률을 이룬 것. 물론 리얼미터 조사에선 여전한 우위를 보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격차가 오차범위 내까지로 좁혀졌다.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은 28% 정당득표율로 정의당(9%)을 압도했다. 그러나 한 달여 만에 그 우위조차 사라져버렸다. 추이를 감안할 때 지지율 역전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럼에도 한국당 어디에서도 위기감은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야권발 정계 재편이 시작되면 보수의 한국당과 진보의 민주당으로 양당체제가 복원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영국 정치를 양분한 보수-자유당의 양당체제는 20세기에도 지속됐다. 하지만 그 얼굴은 전격적으로 바뀌었다. 보수-노동당의 체제로. 우리 정치도 이를 답습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지지율 상승곡선을 그리는 정의당의 기세만 보면, 민주-정의당의 양당체제는 불가능할 일도 아니다. 몰락 위기의 한국당 너머에 어른거리는 영국 자유당의 유령을 나만 보고 있는 것일까.

부산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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