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 미국 휴스턴에서 남녀 테니스 성(性)대결이 펼쳐졌다. 주인공은 여자 세계랭킹 1위의 빌리 진 킹(29)과 시니어 선수 바비 리그스(55). 관중석에 3만여 명이 꽉 들어찼고, 경기 중계방송은 5000만여 명이 지켜볼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세기적이라 불린 이 시합의 결과는 킹의 세트 스코어 3-0 완승. 나이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놀랄 만한 뉴스였다. 리그스는 윔블던을 비롯해 6개 그랜드슬램 대회를 석권했던 스타플레이어였던 까닭이다.

당시만 해도 스포츠 성대결은 여성의 체력적 한계 때문에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럼에도 킹-리그스 시합이 성사된 것은 1960년대 후반 시작된 남녀 차별 철폐 등 여성해방 운동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 경기 이후 세계 테니스계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에서 알 수 있다. 4대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이 남녀 간 상금 차별을 없애기로 했고, 킹을 주축으로 한 여자테니스협회가 최초로 결성돼 여자 선수들의 권익 신장에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이다.

1999년 10월에는 프로복싱 사상 첫 성대결이 이목을 끌었다. 킥복서 출신의 여장부 마가렛 맥그레거(36)와 기수 출신의 로이 초우(33)가 4라운드로 맞붙었다. 결과는 맥그레거의 3-0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 프로 통산 전적이 2패에 불과했던 초우가 시종 아웃복싱으로 일관하며 맥없이 패하자 너무 약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렇다 해도 여성 팬들에게는 통쾌한(?) 장면이었을 듯하다.

남자 대회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도전해 주목받았던 여자 장타자 브리트니 린시컴이 바바솔 챔피언십에서 컷 탈락하고 말았다. 어제 2라운드에서 ‘이글’까지 잡으며 선전했으나, 1라운드 부진 탓에 결국 3라운드에 오르지 못하고 짐을 쌌다. 여성이 PGA 투어 대회에서 성대결을 벌인 것은 2008년 미셸 위를 포함해 6번째다. 그 중 컷 통과에 성공한 선수는 1945년 베이브 자하리아스가 유일하니, 남자 대회의 높은 벽이 새삼 느껴진다.

스포츠에서 성대결은 재미를 주는 요소이나, 승패에만 얽매이는 건 부질없고 무의미할지 모른다. 경기 결과로 ‘성 우위’ 운운하는 자체가 남녀 불평등을 전제로 한 발상이라는 점에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힘든 영역에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자체가 아름답고 의미가 있다. 린시컴이 “나 자신을 알아가고, 긴장 속에 경기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은 어쩌면 컷 통과보다 더 값진 성과이지 싶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