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5세기 영국, 정확하게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이 올해 두 차례나 화제가 된 것은 의외였다. 우선 2018 러시아월드컵 당시 예상을 깨고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4강에 진출한 것이 계기다. 팬들은 “월드컵 사상 첫 잉글랜드-프랑스 결승전이 될 것”이라며 흥분했다. 550년 만에 벌어지는 ‘축구판 백년전쟁’이라고 분위기도 띄웠다. 잉글랜드가 4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 지면서 결과적으로 예상은 빗나갔다. 그러나 프랑스가 우승하자 일각에서는 “백년전쟁의 결과가 재연된 셈”이라는 억지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에 앞서 지난 3월에는 출판계에서도 화제가 됐다. 프랑스 역사학자 데즈먼드 수어드가 쓴 ‘백년전쟁 1337~1453’이 번역 출간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백년전쟁 자체를 다룬 정통 역사서가 국내에 없었기에 환대를 받았다. 주요 미디어의 서평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116년간 지속된 백년전쟁이 어째서 ‘여자로 시작해 여자가 끝낸 전쟁’으로 불리는지 명확해졌다. 저자는 특히 “위기에 빠진 프랑스를 구하라”는 계시 후 열여섯 나이에 깃발과 검을 들고 전장에 뛰어들어 오를레앙을 수복하는 등 맹활약한 ‘백년전쟁 최고 스타’ 잔다르크를 설명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한편 최근엔 ‘현대판 잔다르크’가 지구촌 화제의 인물이 됐다. 이스라엘군 병사를 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그제 출소한 팔레스타인 소녀 아헤드 타미미(17)가 주인공이다. 타미미는 16세이던 지난해 12월 19일 이스라엘 점령지 요르단강 서안지역에서 병사의 뺨을 때리고 발로 찼는데, 그 영상이 유포되면서 팔레스타인 저항의 상징이 됐다. 깃발을 들고 분노를 표출하는 사진까지 퍼지면서 ‘팔레스타인 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녀의 석방 직후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축하인사와 함께 지지 의사를 밝히는가 하면, 어제는 이스라엘 베들레헴 서안지구에 그녀의 얼굴을 그린 대형벽화도 공개됐다. “저항의 길을 택한 이상 다시 체포될 수 있다”며 외부 세계와의 연대를 호소한 나선 타미미가 실제 잔다르크처럼 ‘분쟁 해결사’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짧게는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 이후 70년간 지속됐지만, 길게는 2000년도 더 된 갈등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타미미의 바람처럼 평화를 원하는 더 많은 세계인이 연대에 나선다면 2000년 분쟁 종식의 날도 앞당겨 질지 모를 일이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