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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영화문화의 전환기에 부쳐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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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7-31 20:33:36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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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가 17년 전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상영관으로 쓰였던 거대한 벡스코에서 수많은 관객이 동시에 탄성을 지를 때의 그 전율과 극장을 빠져나가던 기나긴 행렬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큰 단관극장에서 다수의 관객이 같은 영화를 보는 일도 드물어졌다.

최근에 한국의 영화제들을 찾아다니는 일본인 영화광에 대한 영화 ‘텟수 코노의 미친 일상’을 봤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수시로 한국에 와서 연간 20여 개의 영화제를 다니고 있었다. 우리도 가기 힘든 전주, 부천의 국제영화제는 물론이고 지역의 독립영화제들을 찾기 위해 찜질방을 전전하며 바삐 뛰어다니는 모습은 씨네필이라 자처하던 이들이라면 향수에 젖을 장면들이었다. 영화를 보던 중에 그가 지금은 보기 힘든 마지막 영화광이라는 생각이 스치자 무엇인가 가슴에 사무쳤다.

어쩌면 씨네필 문화도 과거의 유산이 되어버린 건지 모른다. 영화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영예롭게 여기던 열기도 찾기 어려워졌다. 재작년 관객영화제를 찾은 영화평론가 강소원은 그 원인으로 달라진 영화향유 환경을 꼽았다. 과거에는 영화 한 편 구하기가 어려워 해외에 나간 지인이 구해온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돌려 봤지만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 탓에 오히려 영화 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화문화는 재편되고 있다. 생활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우리에게 끼니를 거르며 하루 네 편씩 영화를 보던 씨네필들의 초상은 여유를 잃은 워커홀릭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노트북 휴대폰 등으로 영화를 접하면서 방식이 다양화돼 영화는 극장의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아련한 대상이 아니라 일상을 함께하는 친근한 매체로 우리 삶 깊숙이 들어오게 되었다.

한 회의에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이용관 이사장은 영화문화의 이러한 이행에 대해 핵심을 짚으며 ‘지금은 힐링시네마의 시대’라고 했다. 힐링시네마라고 할 때 이 ‘힐링’은 영화의 소재 차원이 아니라 관객이 영화를 향유하는 전 과정에서 체감하는 만족감을 일컫는다. 그렇다. 우리가 영화제를 찾고 극장을 찾는 것은 오직 영화를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누구와 어떤 장소에서 영화를 보는지, 영화관람 전후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영화 외적 요소들을 따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과거에 우리들이 영화에만 치우쳤다면 이제는 생활의 여유로움을 만들어주는 문화로 영화를 향유하고픈 욕구가 커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영화를 내 삶의 자양분으로 만나려 한다. 누군가에게 영화를 보자고 건네는 말에는 극장 주변을 거닐고 영화를 본 후 커피숍에서 대화를 나누며 만남의 즐거움을 더하는 그 일련의 과정을 함께하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얼마 전 극장 바깥으로 나가 거리의 시민들에게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적어달라고 설문을 돌리자 놀랄만한 영화의 목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 영화문화는 향유 주체들의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조명하는 데 소홀했을까? 그러한 활동이 지금까지 드물었던 원인을 생각해본다. 그건 아마도 비로소 영화향유란 말을 온전히 쓸 수 있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누구나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시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구나 영화를 향유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는 의미는 크다. 영화향유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즐겁게 고민하는 일상의 관객문화가 어느덧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실개천이 흐르듯 미약해 보였던 시민관객들의 영화향유문화는 이제 드넓은 바다로 이어지며 뻗어 나갈 것이다.
모든 시대에 빛과 그늘이 있다. 필름의 시대가 저문다고 영화가 몰락한 것이 아니고 극장이 작아진다고 영화체험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영화에 대해 이전과 다른 질문을 던지며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만나기 위해 분주하다. 늘 그랬듯이 좋은 전통은 새로운 주체들과의 유대 속에서 시리즈 영화들처럼 다시 반갑게 귀환할 것이다. 하나의 영화사가 쓰이던 시대에서 백 개, 천 개의 영화사가 쓰이는 시대에 와 있다. 지금까지의 영화운동으로부터 관객운동이 독립하려는 경향도 같은 흐름이다. 영화인과 관객이라는 이분법 속에서 빛바랜 우리들의 고향을 영화의 관객(Citizen of cinema)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가 보려는 시도이다.

모퉁이극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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