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편안 윤곽이 지난 10일 공개되자,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등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먼저 들끓고 있다. 국민연금 개혁의 필요성과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합리적 논의는 뒷전인 채 가입자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와 반발부터 일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제 오전 “보험료 인상 등은 정부안이 아니라 위원회의 자문안”이라고 황급히 긴급진화에 나섰다. 휴일에 사건·사고가 아닌 정부 정책 사안에 관해 주무 부처가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낸 것은 그만큼 여론 흐름이 심상찮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제도발전위원회가 장기재정추계를 분석해 5년 만에 내놓은 이번 ‘자문안’은 우선 연금 고갈 시점이 당초 예상했던 2060년보다 2057년으로 3년 앞당겨진다는 전제 아래, 가입기간 연장, 수급 개시연령 이연, 보험료 인상 등 크게 세 가지 방안을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부는 오는 17일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칠 예정이라고 하는데, 당장 반발 여론을 얼마나 잠재울 수 있을지 걱정이다.

국민연금이 안고 있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나 취약한 보장성 등 문제점을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게다. 국민연금 개혁의 필요성은 진작부터 제기돼 왔다. 결국 세대 간 이해관계 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풀어나갈지가 핵심이다. 방법론과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부가 조급하게 서두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보험료 인상은 특히 자영업자나 퇴직자의 일상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최저임금 등으로 최악의 위기에 몰려 있는 영세 자영업자들 입장에선 불난 데 부채질하는 격 아니겠는가. 국민연금은 서민들이 그나마 미래의 생계를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인 셈이다. 어느 정부든 섣불리 손을 대는 것 자체가 불안하고 신뢰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개혁의 피로감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 개혁까지 밀어붙이는 게 과연 온당한지 의문이다. 매사 때가 있는 법인데 국민연금 개혁 역시 보다 치밀한 설계와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논리 등 사전 준비가 필요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