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3월 말 김포공항에서의 일이다. 학자 출신인 현승종 전 국무총리가 자신의 부인을 마중하려고 국제선 청사 대합실 구석에 홀로 앉아 있었다. 총리직 퇴임 후 1년여 된 무렵으로 75세의 나이였다. 그를 알아본 직원들이 공항 귀빈실 이용을 여러 차례 권유했다. 그러나 현 전 총리는 “일부러 피했는데, 어떻게 알고 왔느냐”며 한사코 고사했다는 얘기다. 힘이 조금만 있어도 귀빈실 출입을 당연하게 여기던 세태에서 그의 행동은 잔잔한 울림을 줬다.

특정 고위층의 전용 공간인 공항 귀빈실은 과거부터 그 사용을 둘러싸고 잡음과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 1986년에는 일부 국회의원이 의전규칙에도 없는 자신의 가족·친지 출입국을 위해 귀빈실 사용을 요청한 걸로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어느 의원은 미국 유학 중 잠시 귀국하는 자신의 딸을 위해 귀빈실을 썼는가 하면, 어느 재외 대사는 자신의 사돈과 주치의가 출입국할 때도 귀빈실을 사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빈축을 샀다.

이명박 정부 때는 공항에 기업인 전용 귀빈실이 등장했다. 이 대통령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 기조에 따른 것으로 2008년 4월부터 운영됐다. 하지만 이용 기업인 대상과 선정 기준 등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국내 기업 수가 300만 개에 달하는데 극히 일부에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불만이 나왔다. 실제 이용객도 적었다. 김해공항에서는 시행 후 6개월간 하루 0.9명꼴에 불과했고, 인천공항에서는 하루 평균 12명이 이용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런데 내년 1월부터 국내 공항 귀빈실의 기업인 무료 개방과 귀빈 주차장 제공이 중단된다. 그간 특혜성 우대 서비스가 10년 만에 폐지되는 셈이다.

부산시가 최근 ‘공항 귀빈실 이용 대상 확대안’을 한국공항공사에 건의했다고 한다. 교통약자인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 동반 보호자 등으로 이용 대상을 늘려 시민에게 무료 개방하자는 것이다. 김해공항에서는 비좁은 청사로 교통약자들이 불편을 겪고, 귀빈실의 이용실적도 저조하다는 점에서다.

그런 취지는 이해가 되지만, 혹여 이용 대상자 범위와 적용 등을 놓고 또 다른 갈등과 위화감 조성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차라리 귀빈실을 없애고 그 공간을 교통약자 대기실 등의 공적인 용도로 적절히 바꾸는 게 어떨까 싶다. 그게 ‘차별 없는 공정사회’라는 시대적 변화 추세에 맞아 보인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