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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당신의 싱코페이션은 무엇입니까 /조갑룡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9-03 18:58:31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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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자의 고향 곡부로 갔다. 가는 길에 산둥성의 성도(省都) 제남(濟南)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음식점에 들어갔다. 종업원이 녹색 비닐로 포장된 물수건을 내어놓는다. ‘어, 이게 뭐지?’ 뜻밖에 ‘파산야우(巴山夜雨)’라는 시 한 수가 적혀 있었다. 해서체를 닮은 글씨라 그 내용을 알 수 없어 함께 간 중국어 교수에게 물었다. 만당(晩唐)의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작품으로, 밤비 내리는 파산에서 장안에 두고 온 부인을 그리워하며 쓴 것이란다. ‘그대 돌아올 날 물었지만 기약할 수 없고/ 파산의 밤비는 가을 연못을 넘치게 하네/ 언제쯤 서쪽 창가에서 함께 촛불의 심지를 자르며/ 오늘 밤 이 파산의 밤비 내리는 정경을 이야기하리오’. 밋밋한 물수건 봉지가 살짝 완곡한 서정을 당겨 넣어 ‘어?… 야∼!’를 자아내게 하였다. 물수건이 다르게 보였다. 일종의 싱코페이션(syncopation)이다.

본래 싱코페이션은 음악용어로 ‘당김음’이라 한다. ‘대∼한∼민∼국∼(♩♩♩♩)’으로 하면 재미없다. ‘대∼∼한 민∼국∼(♩.♪♩♩), 이렇게 앞의 ‘대’가 뒤의 ‘한’으로부터 8분음을 당겨와서 어깨를 들썩이게 하였다. 일상의 평범함을 깨는 일탈, 또는 음악적 농담이라고 할 수 있다. 구창모가 부른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기억할 것이다. ‘… 그대에게 할 말이 있는데/ 왜 이리 용기가 없을까’ 그리고 스네어 드럼의 짧은 필인(fill in)에 이어지는 베이스 기타의 머뭇거리는 듯한 연주도 싱코페이션이다.

한 번은 충청도 어느 동네에서 막걸리 한잔하는데 병을 두른 비닐 포장에 ‘구름을 벗 삼아’라는 글귀에 시선이 쏠렸다. 순간 긴장을 했다. 싱코페이션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눈에 반한 술’이라는 구절을 보면서 실망하고 말았다. 반하게 하려면 우선 시선이라도 끌어야 하지 않겠는가. 묘한 불편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창조하려면 불편한 것을 참지 말아야 한다. 불편한 것,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을 참게 되면 나도 세상도 발전이 없다. 도연명의 시 음주(飮酒) 20수(首) 중에 다섯 번째 시가 떠올랐다. ‘…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꽃 꺾어 들고/ 멀리 남산을 바라보네/ 가을 산 기운 저녁에 더욱 좋고/ 새들도 짝지어 돌아가누나/ 이 가운데 참뜻이 있어/ 말로 드러내려다 할 말을 잊고 말았네’. 양조장으로 전화를 했다. 중국 파산야우 물수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 구절을 넣으면 판매량이 늘 것이니 한 번 시도해 보라고 부추겼다. 생각해 보겠다고 하였다. 시간이 지나 전화를 해봤다. 그냥 그대로였다. 새로움과 풍류가 담긴 술병디자인은 무산되고 말았다. 정말 중요한 진실인데 왜 그들은 동의를 해주지 않는 걸까? 피카소, 비틀스, 스티브 잡스, 그들은 싱코페이션으로 남을 즐겁게 해주는 일을 즐김으로써 성공한 사람들이다.

우리 사무실로 눈길이 옮아왔다. ‘물자 사랑 지금 우리가 할 일입니다. 투명한 공직사회 건강한 정의사회’라는 문구들이 들어있는 공무용 봉투를 보면서 설명할 수 없는 욕구가 생겼다. 봉투의 역할이 단지 내용물을 담는 그릇일 뿐이란 말인가? 하루살이로 취급당하기에는 봉투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데 쓰레기통으로 가더라도 남겨질 그 무엇을 위하여 봉투를 새로 디자인했다. 앞면에는 우리 영재교육진흥원 담벼락에 씌워져 있는 ‘Imagination is more important than knowledge(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라는 아인슈타인의 어록을, 풀칠하는 면의 바깥쪽에는 네루다의 ‘질문의 책’에서 빌려온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를 당겨 넣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내용물을 꺼내고 봉투를 바로 휴지통에 넣겠지만, 몇몇은 글귀와 마주하고는 ‘어, 이게 뭐지?…’라는 놀람으로 잠깐 한 박자 멈칫하면서 그 봉투를 유심히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창의성이라는 삶의 기술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고, 니체의 말마따나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로 혁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싱코페이션은 의외성과 활기, 경우에 따라서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整然)히 달린 청자연적, 다만 그중에 꽃잎 하나가 약간 옆으로 꼬부라져 눈에 거슬리지 않는 심미적 재미를 자아내듯이 절묘한 파격은 우리를 신나게 한다. 오늘 여기, 당신의 싱코페이션은 무엇인가? 우리의 일상을 조금 다르게, 더 재미있고 의미 있게 해 줄.

부산시영재교육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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