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화제다. 지난 16일 방송분 시청률이 최고 18.2%(닐슨코리아)를 찍었다. 구한말 최하층 계급인 노비 백정 천민과 아녀자들의 의병 투쟁사가 울림이 크다. 친일파 저격수인 양반집 아씨 고애신과 미군 공사대리 유진의 사랑도 애달프다. 그 시절, 조선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시현-권애라 부부의 연애담만큼.

영화 ‘밀정’의 실제 모델인 김시현은 부산 영도구 봉래동에서 피란살이를 했다. 그는 1923년 3월 황옥 경부의 도움을 받아 독립운동 사상 최대 규모의 무기를 국내에 반입해 조선총독부를 폭파하려다 체포된 의열단원이다. 일제강점기 감옥에서 보낸 세월이 무려 18년이다.

정작 김시현은 ‘훈장’이 없다. 1952년 6월 의열단 동지 유시태와 함께 독재체제를 강화하던 이승만 대통령을 저격하려 했기 때문이다. 둘이 거사를 모의했던 곳이 봉래동의 한 선술집이다. 그는 백범 김구 암살의 배후에 이승만이 있다고 의심했다. “함께 독립운동을 했는데 정적이라고 죽이다니…. 저 사람을 그대로 두어서는 수많은 애국자가 도륙된다.” 소설가 권광욱이 쓴 ‘권애라와 김시현(해돋이)’에 나오는 대목이다.

권애라는 1919년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돼 옥살이한다. 서대문형무소 동기가 유관순이다. 출소한 이듬해 상해로 망명한 권애라는 임시정부 대한애국부인회에 몸담았다. 김시현은 1922년 모스크바 극동약소민족대회에서 만난 권애라에게 첫눈에 반한다. 톨스토이의 고택에서 ‘전기’가 통한 둘은 백년가약을 맺는다. 블라디미르 레닌이 주례를 섰다. ‘역대급’ 로맨스다.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권애라는 1942년 일본 관동군 특무대에 체포돼 1945년 옥중에서 해방을 맞는다. 대전 현충원의 권애라 묘비에 새겨진 자작시는 그가 얼마나 통일을 원했는지 짐작게 한다. ‘내 항상 그리던 님/허리 꺾인 님이시여/흐르는 피 강산에 즐퍽/끊어진 님의 허리/내가 이어 놓으리’. 늙은 의병은 되찾은 나라의 허리가 잘리자 피를 토하며 유작시를 남겼다.

부산은 김시현 같은 ‘의병’들의 피란지였다. 안성녀(안중근 의사의 누이동생) 여사는 봉래동에 살다가 1954년 신선동 2가 2에서 생을 마감했다. 헤어진 혈육은 끝내 보지 못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자마자 남동생 정근·공근도 옥고를 치렀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1927년 7월 상해에서 숨을 거뒀다. 안중근의 부인 김아려 여사와 장남도 이국만리에서 사망했다. 장남은 밀정이 건넨 독이 든 과자를 먹고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 독립군 통합에 앞장섰던 정근은 상하이에서 객사했다. 백범의 ‘오른팔’ 공근도 충칭에서 암살당했다. 조마리아·김아려 여사의 무덤은 현재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도시 개발로 묘지를 갈아내고 건물을 세우며 사라진 탓이다. 안중근의 유해 또한 여순 감옥 공동묘지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정부의 유해 발굴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남북은 2005년 장관급회담에서 ‘안중근 유해 발굴 공동 추진’에 합의했다. 2008년 첫 발굴은 성과가 없었다. 일제가 안 의사를 매장한 장소에 아파트가 들어선 탓이다. 앞서 1948년 4월에는 백범이 평양을 찾아 김일성에게 유해 봉환을 위해 협력하자고 제안했다. 올해는 백범이 북행길에 오른 지 70년 되는 해다. 때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사흘 일정으로 평양을 찾았다. 남북 정상이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주요 의제로 다루길 기대한다. 문 대통령도 광복절을 앞둔 지난 14일 “김구 선생이 효창공원에 마련한 (안 의사의) 가묘는 여전히 비어 있다. ‘해방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달라’는 안 의사의 유언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자책했다.

내년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자 안 의사 탄생 140주년이다. 또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 의거 110주년이 되는 해다. 안 의사야말로 민족 최대의 원흉을 처단한 미스터 션샤인이다. 이제는 그를 모셔올 때다. 안 의사의 봉환은 남북 관계가 한 단계 진일보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될 것이다. 청산리에서, 봉오동에서 스러진, 수많은 의병도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켜야 한다. 김원봉·김시현이 복권되지 못하고, 안 의사가 타국을 떠도는 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도 새드 엔딩일 수밖에 없다.

스포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