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법부의 신뢰도는 낯뜨거운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한국 국민의 사법 신뢰도는 27%로, 42개 OECD 회원국·협력국가 중 39위다. 전체 평균 54%의 절반에 불과하다. 여기에다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한 ‘재판거래’ 의혹 사태까지 더해지면서 국민의 믿음은 거의 땅에 떨어졌고, 법학교수들은 학생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다며 개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그제 내놓은 사법행정 개혁안은 이처럼 사상 최악의 수준인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대책으로 풀이된다. 핵심은 사법 농단의 진원지인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대신 외부인사들이 참여하는 가칭 ‘사법행정회의’를 설치해 사법행정권한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새로 구성될 법원사무처(집행 업무만 수행)에는 상근 법관직을 두지 않는 데다, 그의 임기인 2013년까지 상근 법관제를 완전히 폐지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아울러 재판제도의 지속적인 개혁을 위해 큰 틀의 범국민적 기구를 구성하는 방안을 조만간 마련하겠다는 얘기다.

이번 방안은 그간 법원행정처 내부의 ‘셀프 개혁안’보다 진일보하고 강도 높은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사법행정 개혁 과정에 외부 참여를 늘리는 한편 판사 집단을 오로지 ‘재판하는 조직’으로 만드는 데 역점을 뒀다는 점에서다. 지난 3월 발족한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가 이미 제안한 개혁방안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관건은 역시 백 마디 말보다 실행이다. 대법원장 직속 실무기구인 ‘후속추진단’을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해 이번 개혁안을 더 구체화하고 연내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그에 비해 사법 농단 수사는 법원의 비협조로 난항을 겪고 있다. 검찰의 사건 관련 압수수색 영장 신청이 90% 기각됐고, 대법원 기밀문건 반출 혐의를 받는 인사에 대한 구속영장도 그제 법원에서 기각되고 말았다. 그러니 전국 법학교수 137명이 집단성명으로 사법 농단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이래서는 개혁안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들고 국민적 지지도 받기 어렵다는 걸 사법부는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