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이 좋으면 뭐하랴. 공감 없인 말짱 도루묵이다. 최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더 놀이학교’가 시빗거리다.
‘더 놀이학교’는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들이 정규수업을 마치면 2시간가량 쉬고 놀게 하다가 오후 3시에 하교시키는 정책이다. 맞벌이 부모들이 그 시간까지 맘 편히 근무하도록 돕겠단 취지다. 이렇게 해 출산율 상승도 기대하고 있다. 위원회의 제안은 일단 옳다. 주지교육과 학습량 과잉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숨통이 좀 트일 것 같아서다.

그런데 모두가 반길 것 같은 이 정책에 교사도 학부모도 손사래를 친다. 왜일까. 교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요즘 교사의 권한은 점점 줄어드는데 책임은 자꾸 늘어난다. 아이들이 학교에 더 오래 머물며 놀다 보면 안전사고가 더 잦아질 테고 그 책임은 교사 몫이다. 지금도 업무량이 많은데 보육 부담까지 떠안을 순 없다.”

학부모의 입장은 두 갈래로 나뉜다. 맞벌이 부모는 탁아시간이 좀 늘세라 반기는 눈치다. 하지만 지금껏 봐온 학교 교육과 교사의 태도는 내키지 않는다. 자녀가 학교에 더 머물수록 스트레스가 커질 거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교사 얘기도, 학부모 주장도 옳다. 위원회 입장이 참 갑갑해졌다. 그러나 놀이학교 정책은 꼭 시행돼야 한다. 다 제쳐두고 자녀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올해 통계청 자료를 보면, 아이들의 비만율이 17%를 훌쩍 넘어섰다. 이 비율은 해마다 치솟고 있다. 최근 여성가족부와 교육부에 따르면 일주일 내내 신체활동을 하지 못하는 애들 비율이 열 명 중 넷 이상이다.

이러니 체력과 면역력이 약해 지방간이나 소아당뇨 같은 성인병은 물론, 각종 질병에 노출된다. 균형 있는 영양섭취도 중요하다. 하지만 먼저 맘껏 뛰놀며 체력과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 놀이는 체력뿐 아니라, 심력을 기르는 데도 좋다. 아이들의 정서를 순화하고 행복감과 사회성도 키워준다. 최근 놀이가 치료수단으로 크게 주목받는 이유다.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더 놀이학교’의 해법은 뻔하다. 현행 방과후학교 프로그램과의 연계를 확대하면 된다. 방과후 시스템 내에서 놀이학교를 운영하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별도로 운영할 때는 프로그램의 중복성을 피해야 한다. 상호교차학습을 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한편으로는 놀이 전문가와 보육 전문가를 별도로 양성하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해야 한다. 안전한 물적 환경도 충분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미세먼지, 황사, 우천 시에도 맘껏 놀 공간을 갖춘 학교는 50% 정도다. 그나마 두세 학급 이상 함께 활용하기도 곤란하다. 시설 용구도 태부족이고 열악하다.

근본요소인 운영시간도 문제다. 위원회는 독일 등의 전일제 학교를 참고해 ‘더 놀이학교’ 정책을 수립했다고 한다. 이것도 되짚어봐야 한다. 자녀를 이왕 맡길 바에 유럽처럼 오후 3시보다는 오후 6시 이후까지 하교를 연장하길 바라는 부모가 꽤 많다. 이게 우리 현실이다.

결국, 위원회는 먼저 우리 실정을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애들이 학교에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매뉴얼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교사와 학부모를 설득할 수 있다. 놀이정책은 긴급한 것이지만,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교육’과 ‘보육’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거든 관련 부처들과 협력해야 한다. 또 이 정책에 냉소적인 시·도 교육청도 설득해 먼저 시범운영부터 하길 권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것이라면, 그 길은 철저한 준비와 공감으로 닦는 것이다. 위원회가 보육도 교육도 아닌 어정쩡하고 막연한 지금의 정책을 그대로 시행하진 않을 것이다. 부디 만전을 기해 좋은 뜻 꼭 이루길 거듭 당부한다.

부산교육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