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밀고 당기는 대화 기류 속에서도 남북 간 평화의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고 있다. 이는 현재 ‘불가역적’으로 보인다. 지난 1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강원도 철원의 비무장지대(DMZ)의 화살머리고지 일원에서 지뢰 제거 작업이 시작됐다. 판문점선언 이행의 첫 단추다. 남북 정상은 지난달 19일 평양 정상회담에서 군사 분야 합의서에 서명했다. 유엔군사령부도 납북 합의를 존중해 지뢰 제거 작업을 승인했다.이에 따라 남북은 각각 자기 측 지역에 대해 20일간 지뢰 제거 작업을 하게 된다.
남북을 연결하는 동해·서해선 철도와 도로 착공식의 연내 개최도 성사될 듯하다. 이를 위해 이달 중 남북의 현지 공동조사 착수가 추진된다. 이와 함께 2020년 도쿄올림픽에 남북이 함께 참가하는 방안을 협의하게 된다. 2032년 하계올림픽의 남북 공동 유치도 추진된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 역시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들은 조심스럽게 방북 채비에 나서고 있다. 개성공단이 재가동된다면 시설 점검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평양공동선언에서 ‘여건’이 조성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기로 명시했다. 개성공단 가동이 전면 중단된 것은 2016년 2월. 이런 개성공단의 연내 재가동 전망까지 나온다. 남북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 우선 정상화에 대해 적어도 남북 정상은 확고한 의지를 보인 상황. 방북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다녀온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 역시 이런 분위기를 전했다. 북측도 개성공단 정상화를 간절히 바라며,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서 개성공단 문제가 풀릴 것이란 낙관적인 견해다. 더욱이 북측은 개성공단 전면 폐쇄 이후에도 시설물 유지 관리를 철저히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개성공단에 대해 쏟아지는 불편한 시선은 여전하다. 북한 퍼주기란 색깔론이 입혀진 까닭이다. 그래서 이참에 한 번 제대로 짚고 가자. 이 분야의 전문가가 있다.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이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대북정책을 수립·집행했고, 개성공단에서 4년간 장기 체류하면서 대북 협상을 맡았다. 김 이사장은 이를 바탕으로 2015년 ‘개성공단 사람들’(내일을 여는 책)이란 책자의 발간을 기획·총괄했다. ‘날마다 작은 통일이 이루어지는 기적의 공간’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개성공단에 대한 오해와 진실’ 대목이 눈에 띈다.
책 속의 내용을 조목조목 따져 보자. 먼저 개성공단은 퍼주기인가. 김 이사장은 북측에 비해 오히려 우리 측이 몇 배는 더 많이 퍼오는 곳이라고 항변한다. 1억 달러(임금, 세금)에도 못 미치는 액수를 투입해 15억~30억 달러의 가치를 창출하는 곳이 개성공단이라고 했다. 그래서 “개성에서 이윤을 내지 못하면 기업도 아니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최근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가 입주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니 응답 기업 101곳 중 95%가 다시 입주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공단 전면 폐쇄 2년6개월이 넘은 시점인데도….
다음은 개성공단이 북측 지도부의 돈줄이냐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이에 대해 빼돌릴 여력조차 없다고 했다. 당시 북측 근로자의 1인당 월평균 실수령액은 7만 원 선. 이것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데에도 빠듯하다. 북측 지도부에서 전용할 돈도 없다는 뜻이다. 애초 개성공단 건설 당시 우리 측은 북측 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월 200달러 수준에서 합의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를 50달러 선으로 대폭 낮춘 이는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북측에 개성공단은 경제적 가치를 따지기 이전에 남북관계 전체를 평화적 관계로 정착시키려는 원대한 구상이었던 까닭이라고 김 이사장은 설명한다. 그는 개성공단이 단순한 경제적 의미를 뛰어넘는다고 했다. ‘남북의 행복한 평화경제와 남북 주민들 간의 작은 통일들이 매일매일 쌓여가는 곳’이라고 했다.
“평화가 경제를 이끌고, 경제가 평화를 지키게 될 것이다.” 제73차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CFR(미국외교협회) 등 공동주최 연설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는 개성공단이 천안함 사태(2010년 3월) 때도, 연평도 포격(2010년 11월) 때도 쉬지 않고 가동됐던 이유이기도 하다.
부국장·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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