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의 남한 쪽에서 가장 북쪽까지 갈 수 있던 향로봉에서 걸음을 북쪽으로 계속 이어간다. 향로봉 정상에서 동해안 화진포를 바라보고 고개를 북쪽으로 돌리면 그리운 금강산이 고작 능선 몇 개 뒤로 펼쳐진다. 향로봉 정상에서 백두대간의 향로봉 분기점으로 가서 북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고성재를 지나 내리막길 15㎞를 가면 해발 500ｍ대의 삼재령에서 정확하게 휴전선을 넘어간다. 북한 땅에 들어서는 이 지점부터는 다시 오르막길이다. 해발 1320ｍ의 무산과 1385ｍ의 국사봉을 지나면 금강산은 코앞이다. 외무재령과 내무재령의 고개 두 개를 넘으면 비로소 금강산 주봉인 비로봉을 밟게 된다. 동쪽으로는 해금강 방향으로 동해의 물결이 반짝인다.
최근 남북 사이에 부는 훈풍을 틈타 산악인의 로망이라는 백두대간 종주를 북녘 땅으로 이어가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의 백두산 방문이 세간의 화제가 됐다. 민족의 영산이라는 상징성이 크기에 백두산을 중국이 아닌 북한 땅을 통해 올라간다는 건 의미가 남다른 일이다. 특히나 산악인들에게는 더욱 큰 의미와 감동을 전해주는 일이라 여겨진다. 백두산은 산악인뿐만 아니라 요즘은 국민 대부분이 익히 아는 백두대간의 이름이 유래한 산이다. 1980년대 한 산악전문지가 백두대간에 대한 책인 산경표와 함께 소개하면서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산맥 개념에 묻혀 있던 백두대간이 빛을 보게 됐다.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산경표의 원칙에 따라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 칭한다. 당시 지리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700㎞에 이르는 산줄기에 전문 산악인이 잇달아 도전했고 이후 길이 뚜렷해지고 차츰 알려지면서 일반 산악회도 숱하게 종주에 나서고 있다. 지금도 많은 산악회가 거듭해서 종주에 나서고 있다. 통상 지리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가 멈추는 지점이 강원도 고성 진부령이다. 애를 쓴다면 향로봉까지는 올라갈 수 있다. 그곳에서 북쪽으로 손에 잡힐 듯한 금강산을 바라보면서 걸어서 금강산에 이를 날을 고대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되돌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남과 북의 경계를 넘어 북한의 산줄기를 걸을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북한 쪽 백두대간을 이어 금강산으로 가고 싶은 게 산악인들의 마음일 것이다. 가능하다면 계속 북쪽으로 걸음을 이어 마식령과 황초령 고개를 지나 대각봉, 백사봉, 북포태산, 대연지봉 등 2000ｍ를 넘는 고봉을 걸어 지리산에서 1600㎞ 넘는 거리에 있는 해발 2750ｍ의 백두산 장군봉에 올라 천지를 내려다보는 꿈까지 꿀 수 있다. 내친김에 천지에 내려가 차가운 물 한 모금 마신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하지만 이런 꿈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남과 북 사이에 한층 더한 대화와 신뢰가 오간 뒤에야 가능할 일이다. 그런 과정의 하나로 남과 북 산악계의 교류가 대화와 신뢰를 두텁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남과 북의 산악인은 교류의 경험이 있다. 금강산에서 암벽 등반을 함께하며 새로운 루트를 개척했다. 일제강점기 선배 산악인들이 일본인들의 괄시 속에서도 국내 산악운동을 일으키며 처음으로 실력을 갈고닦은 곳이 금강산 집선봉이다. 2007년 6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남과 북의 산악인들이 금강산 세존봉에 ‘평화의 길’과 ‘통일의 길’ 루트를 개척하는 등 ‘한 팀으로’ 등반을 한 바 있다. 암벽등반을 통한 교류도 좋지만 백두대간을 함께 걷는다면 더욱 많은 인원이 참여해 우리 산줄기를 답사하며 앞으로 더 많은 산악인과 동호인들을 위한 디딤돌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첫 남북 백두대간 종주는 뉴질랜드 출신 산악인인 로저 셰퍼드가 이뤘지만 앞으로 그 길을 다듬고 주변의 문화와 자연생태를 연구하는 일은 우리가 할 일이다. 향로봉 분기점에서 백두대간을 걸어 금강산 비로봉까지는 지도상으로 54㎞ 남짓 된다. 보통 걸음으로 사흘, 무리하면 이틀에도 갈 거리다. 금강산 육로관광이 재개된다면 우리 민족의 기상이 담긴 백두대간을 육로로, 말 그대로 걸어서 남과 북의 산악인들이 함께 금강산으로 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지금은 가능성이 아주 적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상상만으로 즐거운 일도 있는 법이다.
생활레저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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