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은 영국민들이 자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여기는 인물. 그러나 후대 사람들의 책에는 다윈이 ‘심기증(心氣症)’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심기증 또는 건강염려증이란 ‘건강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염려하는 상태’를 뜻한다. 평소 몸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다윈은 늘 언제 죽을지 모른다며 불안해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다윈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70세 이상 장수했다.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위인 가운데는 이런 심기증을 겪었던 사람이 적지 않았던 듯하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나 에드거 앨런 포와 같은 문인들도 다윈과 비슷한 심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몇몇 학자는 이런 유약함이 오히려 그들의 성취 욕구를 자극해 인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탄생시켰다는 역설적인 분석을 하기도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게 마련. 그러나 의학계에서는 최근에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낸다. 인터넷이나 방송매체에서 의학상식이 넘쳐나는 바람에 그 정보를 바탕으로 지레 자가진단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도 별다른 이상 증상이 없는 데도 병원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병원에서 건강염려증으로 진단을 받은 환자는 3817명으로 집계됐다. 의료계에서는 자신의 병적 상태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 건강염려증 판단을 내린다. 연령대별로는 60대가 21%로 가장 많았으나 20대와 30대도 각각 11%, 9%에 이르렀다. 이러다 보니 국민 한 사람이 의사에게 외래진료를 받은 횟수도 연간 17회(2016년 기준)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에서 제일 잦았다. 병원 입원 기간도 연 18.1일로 일본(28.5일)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물론 조그만 이상 증세가 큰 병으로 확인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잦은 병원 방문을 무작정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그동안 의사가 독점했던 의학정보가 광범위하게 공유되면서 얻는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정도가 지나치면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 건강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강박증이나 우울증 같은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니 예사로 넘길 사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