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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아버지의 카메라 /권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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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10-21 19:22:50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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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필름 카메라라는 게 참 신기하데요.” 대학을 다니고 있는 아들이 밥상머리에서 불쑥 말했다. 아는 형이 보여준 필름 카메라를 이리저리 만져보았다는데, 익숙한 디카와 달라서 재미있었나 보다. 구입을 위해 돈을 모을 생각이라고 했다.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까맣게 잊고 벽장에 넣어둔 그놈 생각이 났다. 곧바로 뒤져보니 해져 덜렁거리는 가죽 케이스 속이지만 말짱한 얼굴로 반긴다. 어느덧 삼십 년을 묵었으나 필름 카메라의 전설로 통하는 놈이다. 손에 착 감기는 것이 요즘의 덩치 큰 디카에 비해 군더더기가 없다. 정직하고 단단한 아날로그의 실물감. 뷰파인더로 보는 피사체의 맑은 느낌과 셔터 소리에 만감이 교차한다. 결혼하던 해, 큰맘 먹고 부평동 깡통시장에서 장만한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이걸로 담아낸 사진이 워낙 많아 아직도 정리하지 못한 채 큰 상자에 수북이 담겨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오르면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카메라가 또 하나 있다. 사진을 처음 알게 해준 아버지의 카메라이다. 아버지는 우리를 어디든 부동자세로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중학생이 되자 소풍을 핑계로 카메라를 한두 번 빌리기 시작하다가 그 횟수가 잦아졌다. 그 후 나의 사진 이력은 흑백에서 컬러로, 그리고 디지털로 이어졌지만, 여태 소풍 사진을 넘지 않는 소박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사진은 많은 걸 주었다. 무심하던 사물이 내가 설정한 프레임에 가두어지면서 낯선 얼굴로 건네는 이야기. 그것에 탐닉하는 동안 내 안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찍은 사진을 활용한 책을 내고 강의 콘텐츠까지 만들어 다양하게 써먹는 현실적 소득도 있었다.

아들에게 카메라를 물려준 며칠 후, 다섯 통의 필름이 택배로 도착했다. 메이저 회사가 필름 생산을 중단했단 소식을 들은 지가 오래되었는데 가격이 여전한 건 의외였다. 필름 끼우는 법을 하나하나 익히는 동안 아들은 별것도 아닌 일에 연신 감탄하며 몰입했다. 무엇이 그를 매혹시켰을까.

취미로 드럼을 배우던 아들이 고3이 되면서 그걸로 먹고살겠노라고 선언했을 때는 억장이 무너졌다. 긴 싸움 끝에 결국 실용음악과 진학을 허락했지만, 입학 후 그의 관심은 롱보드로 옮겨갔다. 소소한 대회에 나가서 가끔 상을 받아오더니 스폰서도 생기고, 인스타그램으로 엮인 보드 친구를 만나러 외국도 다녀온다. 한때 드럼과 음악이 세상 전부인 양하더니, 지금 그의 우주에는 오직 보드만 날아다닐 뿐이다. 이 아이 앞에는 과연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블로그를 가지게 된 건 그것이 세상에 등장하고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어쩌다 만들고 보니, 이건 사진 찍고 글쓰기를 즐기는 나의 산만한 취미와 찰떡궁합이었다. 재미 삼아 올린 글들을 모으니 책이 되었고 K-MOOC 강좌로까지 이어지면서, 어느 결에 세상을 꽤 앞서가는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아들의 삶에서 드럼과 보드와 필름 카메라도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등장한 지 불과 두 해인데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세상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자라나는 세대의 상당수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업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란 전망은 교육 현장을 가위눌리게 한다. 최악의 청년실업 속에서 대학은 당장 취업을 위한 전공지식도 제공하는 한편, 새롭게 쏟아질 신지식들을 스스로 배우는 방법까지 가르치라는 임무를 떠맡았다. 도처의 지식과 전문가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지고 있는 초연결사회에서 생존의 관건은, 소통과 융합을 통해 자력으로 배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될 것이다. 오늘의 대학에는 교수 자신들도 제대로 갖지 못한 이런 능력을 학생들에게 키워주기 위한 온갖 혁신적 구상들이 쏟아지고 있다.
고심 중에 그런 생각이 든다. 인류가 전대미문의 세상으로 발을 들여놓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새로운 기술에 원천적으로 관여하기보다 이를 각 분야에서 활용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안에 만들어 놓은 고리만큼 새로운 세상에 접속하여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책무는 새로워질 것도 없이, 청년들에게 더 많은 걸 보여주고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 귀중품을 맡기기엔 걱정스러웠을 중학생의 소풍 길에 아버지가 선뜻 내준 것은, 렌즈가 든 기계가 아니라, 아들이 새로운 세상에 접속하여 그런대로 괜찮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 고리 하나가 아니었을까. 아버지도 그걸 알지는 못했겠지만.

경성대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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