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군복무 시절, 아침 ‘구보’ 때마다 불렀던 군가가 있다. ‘행군의 아침’. 1절 가사는 이렇다. ‘동이 트는 새~벽꿈에 고향을 본 후/ 외투 입고 투구 쓰면 맘이 새로워/ 거뜬히 총을~메고 나서는 아침/ 눈 들어 눈을 들어 앞을 보면서/ 물도 맑고 산도 고운 이 강산 위에/ 서~광을 비추고자 행군이라네’. 전장으로 나가는 병사의 모습을 그린 내용이다. 육군 10대 군가로 회자됐으니, 군대 갔다 온 사람치고 이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듯하다.

행군은 육군 보병(步兵)을 상징하는 대표적 단어. 보병 부대는 주로 걷기에 의한 완전군장 행군으로 부대를 이동시키는 까닭이다. 공격이든 방어든 군사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하려면 병력과 장비를 제때 안전하게 이동시켜야 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 행군은 주요 전술훈련이자 군사작전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20㎞ 40㎞ 100㎞ 등의 고된 행군으로 인해 발바닥이 갈라지거나 물집과 진물, 피고름 등이 생기는 게 예사였다.

과거에는 행군 중 인명사고도 종종 터졌다. 1990년 7월 초 육군 모 부대 사병 1명이 일사병으로 쓰러져 숨지고 6명이 후송되었다. 그 뒤 같은 달에도 야간행군을 하던 훈련병 1명이 호흡 곤란으로 숨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군 당국은 사전 안전조치를 취했다고 밝혔지만, 찜통더위 속에 강행군을 한 게 화근이라는 비판이 높았다. 심지어 1998년 4월에는 천리행군 훈련을 하던 특전사 대원 중 6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치는 참사도 빚어졌다.

그런 아픔과 고통을 줬던 행군이 앞으로 사라질지 주목된다. 육군이 보병부대의 최소 단위인 분대까지 차륜형 장갑차 등 전투차량을 보급할 계획을 최근 발표해서다. 걷지 않고 차량으로 신속히 이동해 전투력을 극대화하겠다는 뜻이다. 기동성 강화를 비롯해 보병 전투원 및 장비의 네트워크화와 지능화를 핵심으로 하는 ‘백두산 호랑이 체계’의 일환이라고 한다. 행군을 ‘헬(hell)군’이라 부르며 싫어하는 요즘 신세대 사병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육군은 이 체계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2030년까지 전 부대에 적용할 방침이다. 그러면 전통적 도보 보병부대가 없어지고 기동화부대로 모두 바뀌는 셈이다. 각 전투원은 방탄복, 방탄헬멧 등 33종류의 피복과 전투장비로 이뤄진 플랫폼도 보급받는다. ‘뚜벅이’ ‘땅개’ 보병은 옛말이 되고 첨단보병의 시대가 열리는 것 같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