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금속 혹은 도자기(세라믹) 제품들을 살펴보면 각양각색이다. 재료공학 관점에서는 같은 형태의 제품도 내부 미세구조(microstructure)는 모두 다르다. 그 이유는 이들의 미세구조가 구성 원자들의 다양한 배열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모든 제품은 구성 원자들이 자유 공간 내에서 일정한 형태, 즉 결정구조를 이루면서 존재한다(국제신문 4월 10일 자 30면 참고). 그런데 이 결정구조는 제품 전체에 배열되지 않고, 아주 작은 영역에서만 일정 패턴을 가지고 있다. 이 결정구조가 일정한 영역을 재료공학에선 결정입(grain)이라고 하고, 결정입들이 만나는 경계를 결정입계(grain boundary)라고 한다.

결정입과 결정입계를 맨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사례로 어릴 적 흔히 해보았던 비누거품 놀이를 들 수 있다. 목욕 혹은 세수할 때 거품을 만들어서 방울들이 터져가는 모습을 신기하게 지켜봤을 것이다.

그런데 이 거품들은 시간이 지나면 전체 계면에너지를 낮추기 위하여 서로 합쳐지고 크기는 점점 더 커져간다. 거품들이 터지면서 커져가는 모습을 정밀하게 살펴보면 아주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거품들의 크기를 살펴보면 거품 크기를 인위적으로 제어하지 않을 경우 전형적인 표준분포, 정규분포를 얻게 된다. 이를 재료공학에선 정상분포(Normal Distribution)라고 말한다. 정상분포는 크기 분포가 큰 쪽이 약 16%, 작은 쪽이 약 16%, 중간 크기가 약 68%을 이루면서 평균값을 중심으로 대칭 구조를 가지는 분포이다. 전형적 종(Bell) 모양의 형상을 가지고 있고 가우시안(Gaussian) 분포라고 한다. 이런 구조는 우리가 사는 사회나 자연현상에서 흔히 보게 되는 통계 현상이다. 한 집단의 신장(키), 몸무게 분포와 시험성적 분포도 이와 비슷하다. 아주 쉬운 시험이든 어려운 시험이든 최종 성적 분포를 보면 항상 가우시안 분포를 가지게 된다. 모집단이 커지면 커질수록 가우시안 분포에 가깝게 된다.

주변의 금속·세라믹 제품의 내부 미세구조를 정밀 연마(polishing)해 현미경으로 보면, 제조 방법에 따른 평균 결정립의 크기는 달라질 수 있지만 크기 분포는 가우시안 분포의 형태를 가진다. 재미있는 것은 평균 입도가 작은 입자들이 온도와 시간에 따라 비누거품이 커지듯이 성장하는데 입자들이 성장해도 그 분포는 항상 가우시안 분포의 형태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를 정상입자성장(Normal Grain Growth) 라고 한다.

정상입자성장의 반대는 비정상입자성장(Abnormal Grain Growth)이다. 비정상 입자성장은 어떤 한 입자가 주변의 다른 입자들을 점령하면서 일방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현상이다. 세라믹 재료에서 많이 발견된다. 비정상입자성장은 조직의 불균질을 가져오게 되고 재료의 특성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비정상입자 성장을 최대한 피하거나 억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재료공학에서는 가끔 비정상입자를 역이용하여 우리에게 유용한 제품을 설계한다. 즉 비정상입자를 계속 성장시켜 제품의 결정구조가 모두 같은 단결정을 만들어 특성이 우수한 제품을 만들기도 한다.

자연의 모든 것이 정상입자성장과 가우시안 분포를 가지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다. 거의 모든 경우는 정상입자 분포와 정상 입자성장을 한다. 우리 사회도 바로 어떤 현상이 정상적이지 않고 비정상적일 때 큰 문제가 발생한다. 요즘 서울 특정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면서 사회 문제를 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최근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는 가짜뉴스나 인터넷 댓글도 몇몇 사람이 사회 전체를 호도하여 또 다른 큰 비극을 초래한다. IT산업, SNS가 발전하면 할수록 이와 같은 이런 비정상적인 문제는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 시간이 지나고 모집단이 커지면 이런 비정상적인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정상분포를 가지겠지만 단시간 내에서는 사회 전체를 붕괴시키거나 무너뜨릴 수 있다.

재료공학에서 비정상입자성장이 지배하게 되면 미세조직이 불균일하고 특성도 균일하게 되지 않게 되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비정상상태가 만연하게 되면 사회가 불안정해 질까 우려된다. 재료공학의 입자 성장에서 시간이 지나도 항상 안정한 정상분포를 가지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울산대 교수·첨단소재공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