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일정 기간 다른 회사로 옮기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부터 생각했죠. 은행에서 적잖은 예산을 부담하는데 ‘본전’을 찾아야죠. 그게 은행원들의 사고방식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회장님’께서는 뜻밖에도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겁니다. 솔직히 처음엔 의아한 생각마저 들었지요.” 얼마 전 만난 BNK금융지주의 한 간부가 들려준 얘기다.
BNK금융지주 김지완 회장은 지난해 9월 취임 이후 미국 등 유수의 대학 최고경영자 과정(MBA)에 직원이 입학하게 되면 학비는 물론이고 현지 체재비, 임금까지 전액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하라고 지시했다. 직원들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국제 감각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조건도 없다. 해당 직원이 새로운 경력을 발판 삼아 회사를 옮겨도 아무런 제재가 안 된다. 김 회장은 현대증권 대표로 있을 때도 업계 최초로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금융권을 두고 흔히 회자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햇볕이 쨍쨍할 때는 우산을 빌려주면서 정작 필요할 때는 우산을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주로 중소기업들에 해당되는 이 말은 은행이 돈이 필요없을 때는 돈을 빌려가라고 권하면서 정작 어려울 때는 회수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경기에 민감한 중소기업들이 은행권을 원망할 때 주로 쓰는 말이기도 하다. BNK금융지주의 부산은행과 경남은행 일선 지점에서는 지난여름부터 고객들에게 진짜 ‘우산’을 빌려주고 있다. 빌린 우산은 돌려줘도 되고 안 돌려줘도 그만이다. 고객에게 우산 빌려주기는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않고 기업을 돕겠다’는 김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BNK금융지주에서 빌려주는 우산은 지역 업체인 송월과 서림에서 제작한 것이다. 물론 김 회장이 특정 업체를 지목한 적은 없다. 직원들이 지역에서 우산을 제조하는 업체를 수소문한 끝에 두 회사를 찾아냈다. 애초 우산 10만 개 정도를 예상했으나 고객들의 반응이 좋아 20만 개로 늘렸다. 우산 구입에는 10억 원 넘는 돈이 들어갔다.
“전임 회장 체제에서 조직을 위해 바른말을 하다 불이익을 받은 직원이 없는지 찾아보세요.” 김 회장은 취임 이후 주요 임원과 간부들에 대한 첫 인사를 앞두고 측근들에게 이런 주문을 했다. 윗사람에게 아첨하지 않고 언제든 바른말하는 직원을 중용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말은 쉽지만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인물은 부메랑이 돼 김 회장 자신에게도 직언하며 언제든 맞설 수도 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런 뜻을 밀어붙였다. 전임 회장 체제에서 상사에게 고언을 하다 어려움을 겪었던 몇몇 간부는 현재 BNK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
부산은행이나 경남은행과 거래하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지역 중소기업이 최근 들어 부도처리된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이것도 김 회장의 경영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 김 회장은 취임 이후 부산은행이나 경남은행 등 여신 업무를 포함한 계열사의 구체적 경영에 일절 개입하지 않고 있다. 지주와 은행을 분리한 취지를 철저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인다. 당연히 계열 은행 수뇌부도 이런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 김 회장의 이런 원칙주의는 별명이 ‘금융사 CEO’일 정도로 30대 때부터 오랜 동안 금융사를 이끌어오며 몸에 밴 자기관리법이기도 하다. 부산은행의 지점장급 간부는 “미래가 없는 기업은 부도 처리한다는 원칙이 반영된 결과다. 과거 같으면 은행 수뇌부와 이런저런 인연을 통해 자금 지원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비록 전임 회장 때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올해 불거진 부산은행의 채용 비리, 경남은행의 금리 조작 파문은 적잖은 생채기를 낸 후 어느 정도 아물어가고 있다.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은 또 자동차부품 조선기자재 등 지역 주력산업의 불황에 따른 여신 부실도 상당 부분 털어냈다. 여기에 김 회장 특유의 경영 스타일이 서서히 뿌리내리면서 BNK는 새로운 도약대를 만들고 있다. 실제 김 회장은 최근 공·사석에서 “이제 BNK의 주가가 오르는 일만 남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자산 규모 113조 원, 국내 5대 금융사 BNK금융지주의 견실한 성장은 동남권 경제와도 직결돼 있다. 김 회장의 이 같은 예상이 사실이 되기를 바란다.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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