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즈음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경험을 했을 법하다. 정규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롯데의 성적이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한 5강 문턱에 닿아 있었던 까닭이다. 백미는 5강 진입을 다투는 KIA와의 3연전. 경기를 모두 이긴다면 5위가 가능한 반면 한 번이라도 진다면 ‘가을 야구’는 물 건너가는 벼랑 끝 승부였다.
팬들의 간절한 바람이 통했던지 롯데는 3연전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뒀다. 필요 승수는 2승으로 좁혀졌다. 그러나 롯데는 2차전에서 KIA에 졌고 남은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5강 진출이 좌절됐다. 팬들은 최후까지 사력을 다한 롯데에 큰 박수를 보냈다. 반면 한편에서는 애초부터 순위가 아주 뒤처졌더라면 막바지까지 애를 태우지 않았을 거라는 푸념이 나왔다. 어떤 이들은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을 주어서 상대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른바 ‘희망 고문’이 너무 안타까웠다는 댓글도 달았다.
골수 팬들이 들으면 정색을 하겠지만 롯데가 겪은 희망 고문은 차라리 짜릿한 즐거움일 수 있다. 게다가 당장 먹고사는 일이 걸린 것은 아니어서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 내년 개막 전까지 충실한 동계훈련을 통해 전력을 쌓으면 언제든지 반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사회 전체에 희망 고문이 만연하다면 비정상적인 상태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취업에 목을 매고 있는 젊은이들은 요즘 정부 정책에 웃다가 울다가를 되풀이한다. 잇달아 나오는 고용대책을 보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정도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일자리 육성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럴싸한 포장과 달리 구직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기는 역부족이었다. 지난 24일 나온 ‘최근 고용·경제 상황에 따른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방안’만 봐도 목표 일자리가 5만9000개에 이르렀다. 연말까지 이를 달성하겠다는 단서도 달렸다.
청년들은 ‘이번에는 진짜이겠지’라는 마음에 환호성을 질렀을 게다. 그런데 찬찬히 내용을 들여다 보면 다시 실소가 터진다. 산불감시원이나 국립대 에너지 절약 도우미, 전통시장 환경미화원 등 제시된 대부분 일자리가 근로기간 2~3개월의 초단기 직종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맞춤형 일자리’라는 구미가 당기는 이름까지 버젓이 붙였다. 이런 업무의 중요성을 깎아 내리자는 것이 아니라 단기 일자리가 마치 청년 실업을 해소할 수 있는 비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벌린 모양새가 영 우습다는 이야기다.
이러니 ‘언 발에 오줌누기식 대책’ ‘생색만 내는 일자리 부풀리기’라는 볼멘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거센 비난에 직면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얼마 전 국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단기 일자리 5만9000개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81만 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해명을 했지만 입맛이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사정이 있었다면 굳이 일자리 창출 지원방안이라는 거창한 기자회견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그래도 이건 취업 준비생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공공기관 특혜 채용 의혹에 견주자면 사소한 사안일지도 모른다. 잠시 숨 한 번 돌렸나 싶으면 터져 나오는 불공정 채용 소식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할 말을 잊게 만든다. 해당 기관은 손사래를 치고 있으나 현 정부가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나온 부작용임은 누가 봐도 명확하다.
한 발 양보해 이 같은 일이 몇몇 공공기관에서만 은밀하게 이뤄졌으리라 생각했더니 웬걸, 섣부른 추측도 빗나갔다. 특혜 채용 의혹에서 자유로운 곳을 찾는 게 오히려 빠를 지경이다. 이런 혼미 속에서 공공기관 취업을 꿈꾸며 책상을 지키고 있던 청년들의 부푼 희망은 조각조각 무너져 내린다. 교과서를 통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웠던 기회균등은 어느덧 딴 세상 일이 됐다. 물론 정부의 경제 정책을 무작정 나무랄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은 취임 때부터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을 통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줄곧 드러냈다. 촛불시위를 발판으로 탄생한 현 정권에 태생적으로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이 아니라면 이런 기조를 거부할 리가 없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뒤따라야 할 공정경쟁이 시나브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불러온 부작용일 터다.
경제가 어렵다면 정부와 국민이 뜻을 모아 극복하면 된다. 하지만 정부의 무능함을 감추려 이루지도 못할 장밋빛 환상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놔서는 안 된다. 채용 때는 모든 계급장을 떼고 실력을 겨룰 수 있는 공정한 장을 마련해줘야 한다. 희망 고문이 되풀이된다면 결국에는 절망 외에 남는 게 뭐가 있겠는가.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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