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에 판교테크노밸리라는 게 있다. 2001년 IT, BT, CT, NT 및 첨단 융합기술의 성장 동력 육성을 통한 국가 경쟁력 강화를 내세워 정부가 추진한 국가전략사업의 산물이다. 당시 정부는 2008년 9월 리먼사태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형성된 경제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수도권 규제의 틀을 깨는 것을 합리화했다. 정부는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5조2000억 원을 퍼부은 국책사업인 판교테크노밸리 조성을 경기도가 주도하는 방식으로 밀어붙였다.
판교테크노밸리는 2013년 1단계 20만 평이 완공됐다. 1300여 개의 첨단기업이 7만 개 이상의 좋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2016년 기준으로 판교테크노밸리에서 발생한 매출액이 77조5000억 원이다. 경기도 지역 내 총생산(GRDP)351조 원의 22.08%에 달한다. 판교테크노밸리의 매출액을 ‘광역시·도’의 GRDP와 비교하면 부산 78조4000억 원에 이어 전국 7위 수준이다. 판교테크노밸리는 내년까지 2단계(판교제로시티)와 오는 2022년까지 3단계(금토지구)가 개발된다. 정부는 판교테크노밸리가 완성되면 2500개의 첨단기업이 13만여 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 이른바 경제 침체기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국가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명분을 내세워 수도권의 산업기반을 확대해왔다. 판교테크노밸리만이 아니라 서울 양재 기업 연구개발집적단지나 경기도 광교·동탄테크노·과천·광명첨단단지까지 나열하기도 힘들다.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전통산업에 치우쳐 신음하는 지역경제의 현실에서 미래 4차산업을 수도권이 사실상 독점하겠다는 발상이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정부에서 시작된 수도권 산업팽창정책의 수정은 고사하고, 아파트 투기 열풍을 핑계로 수도권 신도시 개발계획을 내놨다. 국토교통부는 수도권 그린벨트를 풀어 신도시 4, 5곳을 개발하는 계획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반대하고 나서자 그린벨트를 직권 해제해서라도 추진하겠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 위기나 부동산 투기 광풍을 내세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수도권 규제를 풀어 첨단산단과 신도시를 짓는다면, 이는 일부 대기업과 투기세력에 굴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도권 산단 개발은 전경련의 요구이고, 수도권 신도시는 투기세력이 노리는 ‘먹잇감’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
수도권 팽창은 ‘노무현 정신’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 전 대통령은 수도 이전과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할 당시 중앙집권론자들로부터 ‘망국정책’이라는 모욕을 감내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물이 세종시이고 지역의 생명줄 역할을 하고 있는 혁신도시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을 향한 비판 가운데 하나가 수도권에 집중된 산업과 도시(인구)의 ‘분산에 따른 비효율’이 국가 경쟁력을 갉아 먹는다는 것이었다. 10년이 지나 세종시와 전국 10개 혁신도시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통계청이 2005년 수도권 인구집중도 변화 전망에서 수도권 인구 비율이 50%를 넘어서는 시기를 2011년으로 예측했으나, 2017년 전망에서는 2028년으로 늦춰졌다. 이를 두고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최근 혁신도시종합발전계획을 의결하면서 ‘혁신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이전으로 정주 인구, 입주 기업, 지방세수가 지속 증가하는 등 지역발전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이런 판단에 근거해 정부여당은 추가로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혁신도시를 기반으로 산·학·연이 결합된 첨단클러스터를 구축한다는 이른바 ‘혁신도시 시즌2’ 전략도 발표했다. 균형발전위는 종합계획에서 ‘낮은 정주 여건 만족도와 혁신도시 내 클러스터의 낮은 기업 입주율은 숙제’라고 명시했다. 정부가 부산의 GRDP에 육박하는 첨단산단과 신도시를 수도권 곳곳에 새로 만들어도 지역혁신도시 클러스터에 첨단기업유치가 가능한지를 제대로 따져봤는지 의문이다. 문 대통령의 균형발전 철학은 수도권의 총량은 묶고 삶의 질은 높이되, 지방은 총량을 늘려 자립기반을 강화하는 세밀하고 단단한 정책적 결단 없이 실현이 불가능하다.
서울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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