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점심은 비워두겠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뒤를 이을 홍남기 후보자가 경제부총리에 내정된 후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시간을 비워두겠다고 한다. 이때 기업인과 상공인, 자영업자를 만나 애로사항을 듣겠다는 것이다.

그는 대기업 중소기업 자영업자를 가리지 않고 누구든 만나 의견을 듣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그의 발언이 가히 나쁘게 들리지는 않는다. 다만 꼭 날을 정해야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럼 나머지 요일에는 현장과는 동떨어진 일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홍 후보자의 말을 들으니 선현이 강조한 ‘시중지도(時中之道)’가 생각이 난다. 이른바 정치에 있어 타이밍을 강조한 말이다. 유학에서는 경(經) 권(權) 중(中)의 개념이 있다.

‘경’은 원칙과 원리를 말한다. ‘권’은 때에 따라 변하는 상황 논리다. ‘중’은 경과 권이 합치된 최적의 상태를 일컫는다. ‘권’은 과거 시장 등에서 물건의 무게를 잴 때 쓰는 저울추를 의미한다. 물건의 무게를 정확하게 재려면 저울추를 눈금(경)에 맞춰 잘 이동해야 한다. 눈금을 강조하거나 저울추를 중시하면 물건의 무게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홍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거쳐 경제부총리에 임명되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시중지도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바탕으로 한 포용국가를 경제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다. 이는 경에 해당한다. 지금의 경제 상황은 사상 최악의 실업률과 낮은 투자,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 이는 권이다. 경제정책의 기조는 유지하되 현 경제 상황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홍 후보자가 경제부총리가 된다면 눈금과 저울추를 잘 헤아려 물건의 무게를 정확히 잴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길 바란다.

이념과 원칙에 사로잡혀 현실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기업인이 그에게 기대하는 첫째 덕목이 바로 권도(權道)다. 권력의 맛에 맞게 잘못된 규제나 제도가 없는지를 살피지 못하고 권력층이 추구하는 원칙만 강조해서는 권도를 알지 못한다.

야당은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 기조를 버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역시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 정권의 눈금이나 다름없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집권 2년도 안 된 시점에서 벌써 폐기하는 건 이른 느낌이 든다. 눈금 없이 경제정책을 펼치면 혼란만 자초할 수 있다.

원칙이나 다름 없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쉽게 폐기한다면 근본 없는 정부나 다름없다. 청와대는 신임 김수현 정책실장의 말처럼 이를 폐기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야당이 경제 상황인 저울추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건 옳다. 현 정부가 눈금에 빠져 저울추를 제대로 보지 못한 우를 범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금을 없애라고 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생각이 든다.

홍 후보자와 김 실장에게 또 당부하고 싶은 것은 경제가 언제 좋아지겠느냐는 질문에 “곧 좋아질 거다”고 답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같은 공직자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한 나라의 경제정책을 좌우하는 책임자가 경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난 무능합니다”라는 말과 다르게 들리지 않는다. 살피고 또 살펴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어야 국민이 안심하지 않겠나. 마침 홍 후보자의 별명이 무엇을 물어도 대답을 잘하는 ‘만물박사’라고 하니 일단 마음이 놓인다.

맹자는 항심(恒心)은 항산(恒産)에서 나온다고 했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는 말이다. 2500년 전 사람도 경제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현 집권 세력이 이 말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이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하려면 먹고사는 것을 걱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청와대 위민관을 여민관으로 바꾼 뜻이 살지 않겠나.

원톱이나 투톱이냐 등 축구에서 나올 법한 말이 경제에서 안 나오도록, 정부와 여당은 국민이 넉넉한 재산을 가질 수 있도록 수요일뿐만 아니라 매일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할 것이다.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