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가까워지면 감염병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긴장한다. 인플루엔자는 겨울마다 유행하기 때문에 유행 전에 미리 예방접종을 해둬야 해 통상 10월부터 예방접종 캠페인을 벌인다. 겨울에는 온도가 낮아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고 식중독이 덜 생길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겨울에 식중독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바이러스인 노로바이러스는 기온이 낮을수록 더 오랫동안 생존하고 아주 적은 양으로도 대규모의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어 겨울도 여름 못지않게 식중독이 많이 생긴다.

이 시절 가장 마음을 졸이며 귀를 기울이는 것은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소식이다. 조류인플루엔자는 사람이 아니라 닭 오리 같은 가금류에서 발생하기에 혹자는 감염병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과 무슨 관계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한 농장에서 키우고 있던 가금류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다른 농장으로 전파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반경 수 ㎞ 내에 있는 가금류를 전부 살처분하는 조치가 취해지는데, 이때 살처분 과정은 모두 사람이 직접 수행한다. 조류인플루엔자는 사람으로 옮겨올 수 있고, 사람에게 치사율이 매우 높아 살처분에 투입되는 사람에 대한 보호 조치가 필수적이다. 이런 보호 조치는 사람의 감염병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이들의 몫이다.

조류인플루엔자는 이름처럼 조류에서만 질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살처분과 같은 접촉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지 사람으로도 옮겨올 수 있다. 이처럼 사람과 동물을 동시에 감염시킬 수 있는 병원체로 인한 감염병을 인수공통감염병이라 한다. 대표적 인수공통감염병이 광견병과 공수병이다. 광견병에 걸린 동물에 물린 사람은 공수병에 걸릴 수 있는데, 이름만 다를 뿐 같은 바이러스가 동물에서 사람으로 옮겨온 것이다.

인수공통감염병은 특별한 종류가 아니다. 놀랍게도 사람의 감염병 중 60%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사람에게 신종 감염병을 일으키는 원인 미생물의 75%는 동물에서 사람으로 옮겨온 것이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신종 감염병은 오랫동안 동물에 존재하고 있었던 바이러스나 세균이 인간에게 옮겨오는 것이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바이러스나 세균이 새롭게 생겨난 ‘신종’이 아니다. 메르스도 낙타에서 인간으로 옮겨온 것으로 인간에게 ‘신종’ 감염병이다.

이런 연유로 감염병 관리를 위해서는 사람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되고 동물, 더 나아가 환경까지 같이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접근 전략을 ‘원헬스(One Health)’라고 부른다. 사람·동물·환경의 건강은 하나로 상호 연계돼 있어 보다 나은 공중보건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선 다분야·다부처·다학제에 걸친 연구와 협력이 필요하다. 원헬스라는 개념은 인수공통감염병을 계기로 발전돼 왔고,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인수공통감염병, 항생제 내성, 식품안전 등이다.

하지만 다분야·다부처·다학제에 걸친 연구와 협력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거의 모든 부처와 학문은 기능 중심으로 점점 더 분절화돼 왔고, 그 결과 효율은 커졌을지 모르지만 여러 분야에 걸쳐 있는 문제 해결은 매우 어려워졌다. 최근 살모넬라균에 오염된 초코케이크로 인해 전국 2000여 명의 학생에게 식중독이 발생했던 사례를 보자. 이 문제의 해결과 재발 방지를 위해 관여되는 중앙부처만 보더라도 질병관리본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농림축산식품부, 교육부가 있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기업까지 관여돼 있어 도대체 이 문제가 누구의 책임인지 가려내는 것도 쉽지 않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손상과 건강 영향 문제도 초기에 어느 부처가 이 문제를 다뤄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려 많은 환자의 고통이 가중됐다.

부처 간 장벽뿐 아니라 학문 간 장벽도 높다. 원헬스 개념이 감염병에서 처음 대두됐지만 사람의 감염병을 연구하는 의학자와 동물의 감염병을 연구하는 수의학자 간의 협력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같이 연구하면 훌륭한 성과가 날 법도 한데 말이다.

조류인플루엔자가 유행하는 겨울을 본격 앞두고 철새와 매몰지를 관리하는 환경부, 가금류를 관리하는 농림축산식품부, 사람의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복지부, 지자체, 그리고 가금류 사육 농가가 모두 잘 협력해 조류인플루엔자 없이 무사히 겨울이 지나가길 기대해 본다. 원헬스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부산시 감염병관리지원단 부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