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0월 쿠바에서는 전운이 감돌았다. 중거리 핵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는 옛 소련의 계획에 미국이 강경 대응방침을 밝히면서부터다. 미국의 위세에 굴복한 옛 소련이 계획을 철회함에 따라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세계는 두 강대국 간 다툼이 자칫 세계대전으로 번지지 않을까 가슴을 졸여야 했다. 1969년 3월부터 9월까지 발생했던 중국과 옛 소련의 국경분쟁도 전면전 직전까지 이르렀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던 사건이다.

유사 이래 전쟁은 늘 존재했지만 강대국끼리의 싸움은 전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두렵다. 더구나 가공할 살상력을 가진 핵무기와 첨단 군사장비로 무장한 미국과 러시아, 중국이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누가 승자가 되느냐와 관계없이 엄청난 후유증을 가져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이런 위험성이 있는 만큼 ‘3대 군사 강국 가운데 가장 강한 나라는 어디일까’라는 질문은 우문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겉으로 드러난 각종 수치 등을 기준으로 한다면 미국은 여전히 부동의 1위다. 국제전략연구소(IISS) 집계를 보면 지난해 미국의 국방비는 680조 원으로 2위인 중국(170조 원)보다 4배나 많다. 더구나 중국과 러시아의 국방비를 모두 합쳐도 미국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미국 의회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와 전쟁을 하면 질 수도 있다’는 경고를 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꾸준히 전력 증강을 꾀하는 반면 미국은 국방예산 삭감 여파로 그동안 가졌던 군사적 우위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보고서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미국의 현재 위상을 적확하게 꼬집은 것이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 군사 강대국이 관련 예산을 늘리려고 지나친 엄살을 부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정부가 이 의회 보고서를 근거로 국방비를 증액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미국의 전력 강화는 군사 강대국 간 불필요한 군비경쟁을 불러올 도화선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 들어 미국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중국은 이를 핑계 삼아 노골적으로 군사 대국화에 박차를 가할 수도 있다.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겠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미국과 중국, 러시아 간 군사대결은 인류에게 끔찍한 재앙이다. 어쩌면 지구촌이 ‘석기시대’로 돌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